차원태목사(전 뉴욕한인교회 담임)
분노의 날, 고통의 날, 폐허의 날, 공포의 날, 지도자 부재의 날, 거짓 지도자의 날, 배신의 날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것이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된 일이 한두 번인가?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는 일’은 지금도 워싱턴과 베이징, 서울과 평양의 루틴이 아닌가? 전쟁과 전쟁의 소문으로 날이 새고, 그 알량한 전쟁의 산술로 해가 지던 인류의 역사는 지금도 요지부동이 아닌가? 평화의 꿈은 언제나 산산이 부서지는 꿈이요, 꿈같은 이야기로 굴러다니고 있지 않는가?
전쟁을 컴퓨터의 모의전투 게임(simulation)쯤으로 생각하는 멀쩡한 성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전투 현장에서 60일 이상 작전에 참가한 병사들의 98%가 심각한 정신외상(trauma)을 경험한다. 명분이 모호한 전투에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침공군의 일원이 되어 싸워야 하는 미군 병사들의 정신적인 갈등을 헤아려 본다. 적군 병사를 숨 쉬는 인간, 가족이 후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도록 병사들을 훈련해야 하는 전투관리자들의 입장을 함께 고뇌하는 현실적인 동정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정신적 상처’에 관심하는 비전문가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다.
전쟁행위 연구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참전병사들의 정신적 상처의 일반적인 이름은 PTSD라고 한다. ‘심리적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해(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상처의 존재와 씨름하는 위정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PTSD의 문제를 다룬 수작
한국 영화 <하얀 전쟁>이 있다. 안정효 원작, 정지영 감독(1992)의 이 영화는 마치 예리한 임상연구의 결과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 소대원들(47명) 가운데 7명 만이 살아 남는데 그들은 저마다 보이지 않는 정신상흔을 가지고 귀국한다. 작가는 전형적 전쟁 소설 스타일을 탈피했다. 전사자만이 전쟁의 희생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도 엄연한 희생자일 수 있음을 알린다. 중년이 된 한기주 벙장에게 죽음의 계곡의 악몽이 때때로 공격한다.
제대 10년 후 어느날 후배였던 변진수 일병이 중증 후유증 환자가 되어 한기주에게 권총을 주며 자신을 죽여달라 한다. 한기주도 똑같은 환자로서 “변일병을 저대로 내벼려 둘 수가 없다. 전우들 곁으로 보내 주는 것이 나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며 방아쇠를 당긴다. 그 주검 곁에 나란히 누워 “이제 나도 마음놓고 소설을 쓸 수가 있겠구나” 하는 한기주의 독백 역시 비극적 장애(disorder)의 표출이다.
나폴레옹 휘하의 저명한 지휘관이었던 조미니(A. Jomini·1779-1869)는 그의 ‘전쟁론(The Art of War)’에서 단언한다. “최대의 비극은 전쟁이다. 그러나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다시는 전쟁연습·군사훈련을 하지 않을” 이사야와 미가의 꿈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태의 ‘작은 묵시록’에는 전쟁이 결코 쉬지 않게 될 것이 암시 되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년>의 섬뜻한 구호가 떠오른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오웰이 지금 살아나면 회심의 미소를 지으리라. ‘Homo homini lupus’ 를 말한 플라우트스(Plautus)도 빗나가지 않은 예측에 안도하리라.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 급한 대로 하나의 비 신학적 처방을 내 놓는다. 하나, 정치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를 회복하라. 직무에 따르는 의무, 지도자의 도덕성·정직성·지성을 회복하라. 둘, 모든 이들의 상상력(Imagination)은 일을 계속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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