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전쟁을 아시아 전역으로 넓히면서 군부대 전체에 군 위안소를 설치하였다. 식민지와 점령지의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적 착취를 하고 전쟁 말에는 은폐하려는 의도로 그들을 살해하거나 현지에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 여성들 중 조선인 여성들이 가장 많았고 그 피해 규모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일본군 결의안이 좀 더 국제사회에 관심을 받을 기회가 왔다. 이번에 UCLA에서 개최되는 세계 대회가 국제협력 증진과 보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이번 기회를 통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위안부’라는 용어가 정확한 표현인지 살펴봤으면 한다.바른 역사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는 과거의 사건과 삶들을 평가하는 일만이 아니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역사의식과 그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당시 일본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고 남성 중심적인 용어이다. 또 피해자의 관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용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점진적으로 따옴표를 써서 ‘위안부’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은 1970년대 일본에서 ‘종군위안부’라는 책이 간행되면서 용어로서 고정되어 왔다. 종군이 붙게 된 것은 종군기자나 종군간호사와 같이 자발적으로 군과 연관을 가진다는 의미가 있다.
또 많은 분들이 이 여성 피해자들을 ‘정신대 할머니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접한다. ‘정신대’라는 용어는 1940년께부터 조선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서 일본 천황을 위해 몸 바치는 부대란 의미이다. 처음에는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어서‘농촌정신대’‘연료정신대’등으로 불리웠다.
1943년 이후 ‘여자 정신 근로령’에 의해 여자 근로정신대를 조직하면서 정신대 하면 여자근로 정신대를 말하는 것으로 되었다. 일제는 군 위안부 제도를 은폐하기 위하여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끌고 가 일부는 노동에, 또 다른 일부는 군 위안부로 사용하였다.
문헌상으로 밝혀진 것은 없으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알려진 사실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밝혀야할 사항이다. 그러므로 ‘정신대’와 군 ‘위안부’는 구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유엔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군대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현재 생존자들의 경우 이 표현을 매우 섬뜩하게 여기고 있어 한국의 학자나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일본군 ‘성노예’라는 두 용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치 못하나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번 세계대회에는 각국의 피해 생존자들이 여러명 참가하는데 내 견해로는 이번이 이들이 참가할 마지막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연령을 고려할 때 다음 대회에는 몇 명 정도가 생존할 것이며 과연 증언을 할 수 있을까도 의심이 된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여 20세기 최대의 인권유린 사례의 피해자들을 돕는 일에 동참해 주고 성금으로도 지원하여 대회 후에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영화 제작으로 결실을 보았으면하는 바람이다.
황근 / 학사장교 동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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