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10월말에 미국으로 이주하는 짐을 싸고 있을 때에 누군가 은근하게 나에게 물었다. “파티 드레스는 장만하셨나요?” “아니요” “아니, 왜? 미국에 가신다면서…”
세월이 한참이나 흘러간 후에 우리는 실제로 이민 보따리에 파티 드레스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지니고 왔다는 한 여인 때문에 배꼽이 빠지도록 모두 웃었다. 우리가 모두 웃었던 것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당시에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드레스를 한번도 입을 일 없이 세월만 흘러갔다.
서양영화에서나 보았던 그 시절의 댄스파티는 젊은 여인들에게 꿈같고 동화같은 장면이었는데, 우리가 살았던 한국을 벗어나기만 하면 언제나 댄스파티에 참석할 수 있으리란 순진한 상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당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들조차도 영화에 나오는 장면과 같은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백화점의 드레스코너에 가면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그것들을 구경하곤 한다. 그러한 감정은 아마도 아름다운 드레스가 주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고, 여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어떤 동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민 짐 속에 고이 간직된 파티 드레스와 그 여인의 마음도 읽혀지는 듯 하다. 비록 그것을 한번도 입지 못했으며 늘어난 체중 때문에 앞으로도 또한 입어 보지 못하게 될지라도 처음 지녔던 동경의 그 순수한 마음은 언제나 소녀처럼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임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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