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축하한다고 말해 준다.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경우 아주 적절한 말이 없으니 그저, 축하, 라는 말을 쓰지 않나 싶다. 내가 지난 이,삼 년 동안 마음속으로는 정해 놓고도 조금씩 연기해 오던 큰 결정을 드디어 굳히고, 이메일로 공문을 띄운 직후 이다.
30년 넘게 몸담고 있던 직장에서 은퇴하기로 작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즐겨 해온 일을 그만 둔다는 것도 그렇지만, 일과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들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힘 드는 일이라는 것을 절감 한다.
긴 세월 동안 이쁜 정, 미운 정을 나누어 온 동료들,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온 그들과 앞으로는 매일 보는 일이 없을 것도 실감 나지 않는다. 더러는 부럽다고 말한다. 은퇴 후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묻는 사람들도 있다. 벌써부터 파트타임으로 일 하지 않겠는가는 섭외가 들어오기도 한다. 수백번이나 함께 식사 할 기회가 있었건만 지금까지 미루다가 밥 먹자는 친구들도 많다. 나는 어떤 파티도 거절 한다고, 나의 뜻을 존중해 달라고, 정식으로 부탁 해 두었다.
그리고 시의회 에서 주겠다는 감사패나 표창도 정중히 사양 했다. 어느 동료는 얼마 전에 아주 요란스럽게 은퇴식을 하고 떠났다. 민폐까지 살짝 끼치고 떠나는 사람도 보았다. 자신의 긴 근무 기간을 이 도시와 시민들에게 베푼 공로 혹은 공헌으로 확신하며 칭송을 받기 원하는 은퇴자도 가끔 본다. 나는 그런 뱃장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생각도 다르다. 나의 전공분야에 종사 하면서 알맞은 대우를 받으며 즐겁게 내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즐기며 한 일이 결과적으로 어떤 형태로던 공헌이 되었다면 그것은 보너스이며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30년 이상 봉직하는 동안 80여만 건에 달하는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었고, 25만 달러 상당의 새 책을 샀고, 낡은 책을 추려 내었다. 일주일에 하루씩 인터넷을 가르치기도 했다.
나는 베벌리힐즈 시의 외국 태생 공무원 제 1 호로 일을 시작 했다. 사무실에서 재료를 목록하는 일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퍼블릭 상대의 레프런스에 응시 했다. 시민들은 조금 놀라워하면서, 조금 신기해하면서 나를 대해 주었다.
그 시절에는 자존심으로 가득 찬 베벌리힐즈 주민들만 이 도서관을 쓸 수 있었고 지역사회의 구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인종차별을 받는다고 느껴 본적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동료들 보다 더 많은 은막의 큰 이름들을 고객으로 돕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환영이다. 한국 학생들이 숙제하러 오기도 한다. 언어 소통이 힘든 한국분들이 나를 찾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은퇴를 하면서 나는 그런 분들에게 가장 미안하게 생각한다. 도서관은 모든 정보의 창고이며 석사 혹은 그 이상의 학위를 소유한 전문인으로부터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 이다. 많은 한국분들이 그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
섣달그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마쳐야 할 일도 많고, 먹어야 할 점심도 많다. 그 후에 무엇을 할지는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다. 늘 시간에 쪼들리며 살던 생활에 여유가 생기는 일은 참 유쾌할 것 같다. 주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놀 수 있다는 것, 신나는 일 아닌가. 안톤 슈나크는, 휴가의 마지막 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다. 나는 이제 휴가의 마지막 날에 슬프지 않아도 된다. 다뉴브 강을 따라서 유람하다가 더 하고 싶으면 라인 강으로 옮기면 된다.
늘 가고 싶어도 휴가가 모자라서 못 갔던 티베트에도 갈 수 있겠다. 기운이 남으면 마추피추도 하이킹을 해서 오르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원봉사를 할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시간의 가난에서 해방된 이후에 내가 할 일은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송정원 /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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