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성
피부관리 국제면허 소지자
반신욕 (4)
필자는 어려서부터 심하게 추위를 탔다. 오죽하면 몇 십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이 인사로 건네는 말이 “너 아직도 추위를 타니?”일까.
하여튼 이 따뜻한 하와이에서 사는 지금도 절대로 맨살을 드러내는 옷은 입지 못한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한국을 강타한 반신욕 선풍에 동참하게 되었다. 반신욕이 혈행을 개선시킨다니까 혹시 몸이 좀 더워지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미지근한 물에 배꼽 위까지만 몸을 담그고 앉아 있자면 겨울철에는 좀 춥게도 느껴질 정도이다. 그럴 때에는 내복을 입거나 상체를 몸이 더워질 때까지 수건으로 덮어쓰고 있어도 된다.
한 20 여분이 지나면서 몸이 슬슬 더워지며 땀이 흐르는데 그 땀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중간 중간 녹차나 주스, 생수 같은 음료수를 마셔 수분을 보충해 준다.
목욕이 끝나면 몸이 따뜻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장시간 사우나를 했을 때 같은 나른함이나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손발이 시리지 않아서 무엇보다도 좋다.
그러나 이런 신체적인 이유보다 진짜로 반신욕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히려 정신적인 이유이다.
처음에 반신욕을 시작했을 때에는 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서 조바심을 내기도 했었지만 처음에 정해 놓은 시간동안 꾹 참고 제대로 반신욕을 끝냈을 때에는 몸도 가뿐해 지고 무엇보다도 지루함을 이겨낸 성취감도 커졌다.
그러는 동안 나름대로 반신욕의 순서가 정해졌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지루해하기 보다는 아예 지루함에 동화되어 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땀이 나기까지는 그날 하루의 일이라든가 자신에 대해서 이것 저것 생각하면서 기도를 한다. 내 기도의 내용은 거의 비슷해서 어쩌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다. 그저 모든 것은 신의 가호일 뿐 전혀 나의 능력이 아님으로 교만해지거나 방심하지 않고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 말게 도와주시고 언행을 조심하여 죄를 짓지 않게 지켜주시고 남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게, 그리고 무엇보다 시험에 들지 않고 조신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물론 이렇게 간절하게 주문을 걸어도 다음날이면 언제나 불만과 험담과 과격한 언행으로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후줄근해진 자신과 마주하게 되지만 말이다.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 기도를 마치고 얼굴에서 욕조로 떨어지는 땀방울을 세기 시작한다. 보통 천까지 세고 반신욕을 마친다.
그리고는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데 이 때 비누는 가급적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오랜 시간 물속에서 땀을 빼며 노폐물을 많이 제거한 상태라서 굳이 비누를 많이 사용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많은 양의 비누는 피부를 더욱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보통 하루는 세타필(Cetaphil)같은 중성 세제를 쓰고 하루는 비누를 쓴다.
이런 과정의 반신욕이 끝나면 하루의 일과가 제대로 끝난 것 같은 개운함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렇게 몸과 마음의 때를 다 비워냈으니 내일 죄를 좀 지어도 안심이 될 것 같은 맹랑한 여유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맹랑한 여유라는 것은 또한 다음날을 열심히 살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의 한 종류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반신욕을 한다. 몸의 때보다 마음의 때를 씻기 위해서, 그리하여 또 내일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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