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스님,
한 여름 밤의 열기로 숨막혔던 날 하안거(夏安居)라도 시작했단 말입니까? 사는 것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잔잔한데 목우는 돌아 올 길없는 열반의 문턱에서 말이 없군요.
꿈에도 그렸던 목우의 부음을 듣고 가슴이 저려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죽는 것이 정한 이치라지만 홀홀히 세상을 등진 목우와의 못다한 인연 정말 아쉽군요. 중생 모두가 인연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이승에서 사귐을 갖지 못하고 헤어진 목우와 나 사이에는 하찮은 인연조차 없는 모양입니다.
워싱턴에 도량을 차려 사해 대중을 구원할 큰 꿈을 꾸렸던 스님의 말로는 흉사요, 제 나라 제 집을 떠나 이역만리 타지에서 죽었으니 객사입니다. 그러나 공생과 빈부귀천을 멀리 해야 할 탁발 중의 삶에 객사가 따로 있겠습니까?
버지니아에 흐르는 물소리와 산 빛 모두 고향같아서 교교한 달 빛과 청정한 바람마저 나그네 길을 인도하는 목탁소리 아니겠는지요?
신문 지상에서는 이제 중복을 벗고 결혼 하고 싶었다던데 이국 땅에서의 외로움도 목우를 비켜 갈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어제 채원화 보살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30년전, 다솔사를 찾아 법륜에 귀의했던 상좌 시절의 목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암울했던 박정희 치하에서 현실 참여에 대한 갈증으로 영어의 몸이 되었다가 동생마저 행방불명되어 이제껏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대명천지 우리 역사의 비극 아니던가요?
채 선배는 지난 해 목우와의 만남을 가슴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절대 진실하고 너무 맑은 영혼 탓에 고지식하고 융통성이라고는 한치도 없는 목우야 말로 어쩌면 이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상인지도 모릅니다.
병든 사회를 결코 용납하지 못하던 당신의 고지식함, 장사꾼으로 전락한 종교인들을 마냥 경멸했던 목우의 장삼 자락의 오지락은 얼마나 넓었을까? 미루어 짐작만 해 봅니다.
자신이 마땅히 누릴만한 명예에 지긋이 눈감고 지선과 진관 스님에게 양보하는 당신의 너른 가슴이 백낙청과 신경림의 마음을 흔들었나 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탈북자의 쉼터를 걱정하였다니 당신이 편히 누었을 그 자리가 오히려 불편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이 땅의 버림받은 인생들에게 보시를 베풀고 번뇌를 거두는 진정한 부처였습니다.
지난 석 달동안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나는 목우가 수계를 받았던 다솔사를 세 번이나 찾았습니다. 물론 당신의 선생이었던 효당 대종사의 흔적을 찾는 일이었지만 봉명산과 차 밭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호젓한 길을 걸으며 숲 새에 이는 역사의 바람을 마셨더이다. 진한 동백과 노송의 향취가 허술한 부도전 대나무 사이로 불어 오더이다.
목우.
그대가 언제 이 세상에 머물렀던가?
나는 목우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가는 것 또한 보지 못했는데.
열반으로 떠난 목우가 눈빛을 거두는 곳이 공이요
깨달음의 마지막 화두이기를 바랍니다.
그 흔하디 흔한 술 잔보다
봉명산 용산사 절터에서 소중히 따온 찻 잎을 다려 만든 반야로 차 한잔 올립니다. 지혜의 이슬, 당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공양입니다.
아직도 목마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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