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세월은 빠른 것 같다.
그러나 빠르게 가는 세월 속에 좋은 것도 있다. 벌써 큰 외손녀가 금년에 대학에 들어간다. 자기 아버지는 치과 의사인데 장래 소아과 의사가 희망인 그 아이는 의과대학으로는 금년 랭킹 3위인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아메리칸 유니버시티에 얼리 디시즌을 하여 합격하더니 3만 여 달러가 넘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게 되었다. 학사 학위를 무사히 마치고 부디 의과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 아이가 8월에 대학 캠퍼스로 가기 전까지 한국에서 온 두 아이를 가정교사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첫 주급을 탔는지 내가 좋아하는 ‘추억의 건빵’을 사가지고 왔다. 나는 제일 좋아하는 주전부리가 건빵이다. 그것도 ‘추억의 건빵’이다. 그 건빵 겉봉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 좋다.
“옛날 맛 그대로 추억의 건빵” “배고팠던 그 시절/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시던/ 아련한 느낌 그대로…”
추억의 건빵 그 속에는 향수를 달래주는 중량 4g의 별사탕이 어김없이 들어있어 더 좋다. 팍팍한 건빵을 목메게 먹다가 별 모양의 그 별사탕을 작은 비닐 봉투에서 꺼내 세고 또 세어보다 하나씩 입에 넣고 씹어 먹는 그 맛이야 정말 말하면 잔소리다.
내가 건빵을 처음 대한 것은 6.25 전쟁으로 인해 제주도로 피난을 갔을 때다. 제주도로 피난을 간 우리는 어느 집 문간방에 세를 들어 살았는데 그 집 주인이 도청 국방경비과에 다니던 공무원이라 어느 날 어머니에게 건빵을 건네주어 우리는 먹게 되었었다. 피난살이라 먹거리가 없던 그 시절 건빵은 참으로 맛이 있었다. 언제쯤 또 집주인 아저씨가 건빵을 주려나 기다리던 생각이 지금도 아련히 난다. 그래서 건빵이 나에게는 동경의 최고 최상의 과자였다. 하여 돈을 주고 내가 처음으로 사서 먹은 것도 아마 분명히 건빵이었을 것이다.
손녀 아이가 내게 묻는다. “할아버지, 추억의 건빵은 무슨 건빵인데 그렇게 좋아해요?”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이던 나는 이런 대답을 생각해낸다. 그렇다, 추억의 건빵은 전쟁이 생각나는 건빵이다. 피난살이가 생각나는 건빵이다. 배가 고플 때 먹었던 건빵이다. 외로울 때 먹었던 건빵이다. 제주도에서 유행병을 앓다 하늘나라에 먼저 간 참으로 예뻤던 정숙이와 금숙이 두 여동생 생각이 나는 건빵이다. 아니, 그보다 더 가슴이 아린 것은 피난길에 잃은 누나를 그리워하며 같이 나누어 먹고 싶어서 울며 먹던 건빵이다.
손녀 아이가 건빵을 건네주며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한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이 ‘추억의 건빵’은 얼마든지 사드릴 수가 있어.” “그래, 그레이스야. 앞으로 네가 의사가 되고 돈을 많이 벌어도 할아버지는 값이 싼 이 건빵, ‘추억의 건빵’을 변함없이 좋아할 거야. 내게는 사연이 있으니까.”
그렇다.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난을 물려주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가난의 교훈, 배고픈 추억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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