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유학생활의 초창기 호놀룰루의 맥컬리 도서관을 처음 찾았을때의 기억이다. 대학 개강이전의 여름방학이었고 마땅히 찾아야 할 친구나 공간이 전무했다. 지금의 도서재단도 자체공간이 마련되기 이전이지만 도서관 한 켠에 빽빽이 꽂힌 한국 책들을 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던 것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한국 책의 촉감이 좋았고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스며나는 코끝의 찡긋한 한국종이의 향기도 좋았었다. 정작 한국에서 책을 즐기는 독서광이 아니던 내가 어떻게 책을 보며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지...
때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집의 책상위에 올려 놓고 멀건히 쳐다보는 그 자체 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짐을 느끼곤 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느끼던 그런 감정이나 감상이 그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나의 감상이나 감정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몇평 안되는 서가들사이, 한국말로 쓰여진 한국책들 앞에 서서 나는 내 스스로 한국이라는 공간을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를위해 준비되고 언제나 기다려주는 공간, 그리고 마음속 허전함을 우리말인 한글로 채워주는 공간...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가 누구임을 스스로 깨우쳐 주는 그런 공간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이젠 맥컬리 도서관의 서가는 예전에 비해 몇 배로 늘어난 자체공간을 확보하고 더욱 많은 한인들을 찾을 수 있도록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맥컬리 도서관의 한인 이용객들은 그들의 세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평일 오전시간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신문이나 교양서적을 이용하시고 오후 이른 시간에는 주부들과 유학생, 그리고 오후 늦게부터는 학교를 마친 어린학생들이 재미있는 만화책이나 소설책등을 주로 탐독하곤 한다.
지난 몇 년사이 본국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체성’ 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고 있음을 느낀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정체성이라는 주제가 본국인 한국에서 사회적 이슈가 된다는 것이 필자를 포함한 외국에서 주거하는 한인들에게는 영 어색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처럼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욱 중요시 되는 삶의 이슈가 본국인 한국에서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된다는 사실에 대한 혼란스러움에서 기인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수동적인 습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책은 독자들에게 명확한 관점을 보여준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한다면 한국 책 속에 숨어있는 한국인들의 삶과 관정 자체가 우리가 쉽게 말하지만 표현하기에 어려운 우리의 ‘정체성’의 반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이민1.5세, 2세 학생들에게 도서관의 한글 책들은 무슨 의미로 받아 들여질까...
맥컬리 도서관에 가면 이들 한인 후손들이 자원봉사로 책정리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왜 이런일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그냥, 제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이거 하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라고 단순하고 쉽게 답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대답속에 일종의 소속감과 자부심이 배어있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자신의 책임감을 스스로 깨우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인사회 자존심 지키기로 시작되어 한인들의 관심과 봉사로 성장하고 이젠 한인사회는 물론 타인종 커뮤니티에게도 무언의 교훈을 전해주는 맥컬리 주립도서관 한국어 도서코너.
그곳에서 붐비는 한인 2세들과 가족들을 보며 ‘정체성’이란 단어를 다시한번 곱새겨 본다.
신현창
하와이 주립대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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