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나는 얼마 전에 신문기사를 통해 접했던 한 예술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시카고에 사는 35세의 레이 놀랜드라는 흑인 예술가인데, 그는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차에 받혀 정신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병실에서 깨어보니 얼굴과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고 6주를 입원해 있어야 했다.
꼼짝 못하고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죽을 뻔했다가 다시 주어진 인생을 멋지게, 뜻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시작한 일이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오바마 의원의 포스터를 그리는 일이었다.
물론 오바마 후보 측에서 청탁을 해온 것도 아니고, 보수를 바라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오바마 후보를 존경해 왔기 때문에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명문 시카고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작은 회사를 전전하며 그래픽 디자인, 티셔츠 디자인, 잡지일 등을 해왔고, 교통사고를 당했던 당시에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는 이 모든 일을 접었다. 그리고 오바마 후보의 포스터 그리는 일에만 매달렸다. 컴퓨터로 디지털 초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기도 하면서, 그저 좋아서, 뜻있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그 일에만 매달렸다.
컴퓨터로 제작한 오바마 후보의 디지털 초상화를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보내니 즉각 멋지다는 반응이 있었고, 어느 사이에 사이버 공간을 타고 전국으로 전파되어 나갔다. 곧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20장, 30장쯤의 주문이 들어오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단위가 1,000대로 늘어났고, 짧은 애니메이션 제작 청탁도 들어왔는데, 그 수입의 전액을 다시 새로운 포스터 제작비로 투자했다고 한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던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포스터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열정적이고 약속을 지키는” 오바마 후보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다고 했다. 지난여름에 시카고 거리에 첫 선을 보인 그의 포스터는 디트로이트, 뉴욕 거리에도 눈에 띄기 시작했고, 가두예술에 관심을 가진 수집가에 의해 그의 정체가 밝혀지게 된 것이었다.
포스터나 전단지를 붙이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에 밤에 그의 친구들이 경찰의 눈을 피해가며 거리에 포스터를 붙였다고 한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어떤 형상으로도 이름이나 사인을 하게 마련이건만 그는 자신이 제작한 오바마 후보의 포스터에 자신의 이름을 넣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작품의 포커스가 오로지 오바마 후보에게만 쏠리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자연스레 알려지게 되었고 지난 2월9일에는 시카고 다운타운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전시회를 열었고, 다른 도시에서도 전시회 청탁이 들어왔다.
‘go tell mama’라는 독특한 이름의 웹사이트도 공식적으로 운영하면서 오바마 후보 선거운동에 도움을 주고, 자신이 만든 포스터, 티셔츠, 비디오 등을 상품화해서 온라인으로 주문도 받고 있는 그의 가능성은 무한해 보였다. 또한 오바마 선거위원회에서도 공식적으로 그의 작품을 선거운동에 사용하기 시작해 그의 원래의 목표가 이루어졌다.
자신의 재능을 단순한 호구지책으로 삼았을 때는 갖은 애를 써도 얻어지지 않던 기회가, 교통사고를 계기로 인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열정과 목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투자하니, 뜻하지 않았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전시회도 열게 되었던 그 예술가의 근황이 참으로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이영옥 <수필가·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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