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소위 말하는 명문가 문에서가 아니라 자수성가한 흑인이 새로운 지도자가 된 것에 우리 모두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민자인 우리도 성공을 하거나 자식이 잘되는 것을 보면 명문가문이 되는 것 같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경우를 본다. 진정한 의미의 명문가란 어떤 것일까?
나는 작년에 인도네시아를 짧은 기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찾아간 곳은 지구의 끝이라고 느껴질 만큼 오지였다. 싱그럽고 울창한 나무, 매미소리, 들 피리소리는 나를 반겨주는 합창곡 같았다. 하지만 땀이 줄줄 흐르는 적도의 무더위와 모기들은 매섭고 따가웠다. 나는 그 곳에서 닥터 웬델 기어리와 폴 기어리 부자를 만났다. 대를 이어 희생과 헌신으로 필요한 곳에 사랑을 나눠주는 그들을 보면서 이 가문이야 말로 진정한 명문가란 생각을 했다.
아버지 웬델 기어리는 외과의사이다. 미네소타에 살던 그가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 밀림지역으로 간 것은 40년 전이었다.
그 곳 척박한 땅에 원주민들을 위한 작은 진료소를 시작한 것이 지금은 병상이 100개가 넘는 큰 병원이 되었다. 병원 이름은 ‘베데스다’-‘긍휼의 장소’라는 뜻이다. ‘긍휼의 장소’는 종교나 종족에 관계없이 모든 환자들에게 열려 있다.
뜻이 훌륭하다고 처음부터 병원이 쉽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병원을 한다고 했을 때 원주민들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비협조적이었다. 죽을병에 걸린 환자를 수술해 주어도 경과가 안 좋으면 의사 때문에 죽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덮어씌웠다.
비가 많은 고장이라 물난리로 건물이 망가지고, 툭하면 진흙땅에 차가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그 자신 말라리아에 걸려 온몸이 불덩이가 된 참담한 상황도 많았다. 필요한 식량과 의약품이 떨어져가는 절박한 상황도 수없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돕는 손길들이 생겨 버텨나갔다.
그 곳에 전기가 없는 것을 안 친구들은 병원 부근 산정의 호수에서 물을 내려 터빈을 돌리는 자그마한 수력발전을 만들어주었다. 또 급한 경우에 사용되는 세스나 7인용 경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짧은 활주로를 병원 앞에 만들어준 손길들도 있었다.
아들 폴은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어머니의 홈스쿨링 지도를 받으며 고등학교 때까지 지냈다. 미국에서 대학과 내과의사 수련을 마친 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즈음 그는 다시 인도네시아로 들어갔다.
지금은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도 어려움은 예외 없이 찾아왔다. 피비린내 나는 부족 간의 싸움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다가 두 부족 사이에서 오해를 받고 양쪽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부인이 갑상선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해야만 하기도 했고, 9.11 테러사태 후 외국인은 떠나라는 압력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도움을 받은 주민들의 위로와 뜨거운 신앙으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4명의 자녀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문명의 혜택은 적지만 부모님들의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흠뻑 받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나는 베데스다에서 닥터 기어리를 도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응급실, 병실, 외래에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돌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닥터 기어리 부자의 발자취와 심정을 느끼는 마음으로 지냈다.
빡빡한 방문 일정 때문에 나와 일행은 마지막 시간까지 일하고 세스나 비행기로 정글을 떠났다. 밑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병원 직원들의 모습이 아련해지고,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정글 속의 마을은 너무나 아름답게 멀어져 갔다.
나는 크게 외쳤다. “두 분 기어리 박사님, 존경합니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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