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바나씨가 대동광업과 대동전문학교를 설립한 월북 기업인 이종만씨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님의 소원’을 뉴욕에서 상영했다.
외조부 월북 기업인 이종만 씨. 어머니 이일순 여사 얘기 다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 많은 이산가족의 공통된 이야기면서 동시에 평범하지만은 않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뉴욕에서 상영됐다. 캐나다 시민권자이며 현재 미주리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하버드 대학 교육학 박사 김반아씨가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상영과 영성철학 강의를 함께하는 ‘님의 소원(Sacred Mission)’ 프로젝트를 19일 맨하탄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공개했다.
김씨의 외조부 이종만씨는 해방 전 조선을 대표하는 기업 대동광업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30년대 후반에는 농업, 출판, 학교 등 5개 거대 사업체를 거느리는 대실업가로 성장했다. 그는 수익금의 대부분을 영세 광산 지원, 자영농 육성, 신문화 보급, 과학기술 전문가 양성에 쏟아 부은 계몽주의자였으며 김 구 선생이 이끌던 임시정부의 가장 큰 재정적인 후원자였기도 하다.
이종만씨가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가 김일성 체제의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월북자이기 때문이다.(그가 해방전 평양에 세운 대동공업전문학교는 김일성 종합대학의 전신이다) 이종만씨는 49년 평양에서 열린 전국기업인회의에 참석한 이후 돌아오지 않았고 이후 북한의 통일위원회 위원장과 인민최고위원, 광업위원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다 77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가족사를 고려할 때 부와 학벌로만 따지면 남부럽지 않은 기득권층이었던 김씨의 부모가 64년 고국을 등지고 40여년을 넘게 외국 생활을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김씨의 다큐는 외조부 못지않게 어머니 이일순 여사에게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브라질을 거쳐 68년 ‘중립국’이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김반아씨 가족이 외조부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75년이었다. 김 박사의 어머니 이일순씨는 주위의 우려와 캐나다 한국대사관의 집요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에 아버지 얼굴을 한번만 볼 수 있다면 어떤 것도 감내하겠다”며 평양으로 떠났다.
막상 평생의 소원을 이루긴 했지만 북한 방문의 후유증은 컸다. 3남매를 모두 명문 대학에 입학시켜 토론토 한인회로부터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어머니는 방북 후 쏟아진 동포 사회의 비난과 모욕에 충격을 받은 후 심신이 완전히 망가질 정도로 오래 병고를 겪었고
치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김 여사는 이후 “이념을 떠나 모든 사람이 화목한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영성활동을 지속했고 외국 생활 42년만인 2006년 제주도로 역이민 했다.
김씨는 외조부에 대한 자료와 어머니가 30년 동안 작성해온 일기를 바탕으로 2005년부터 다큐멘터리를 준비했고 올해 5일간 평양에서도 20시간분에 달하는 촬영을 마쳤다. 그는 이 작품이 무엇보다 자신의 가족이 겪은 오랜 정신의 여정을 기록한 가족 다큐라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여전히 전쟁과 이념투쟁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한인 관객과 김정일 위원장을 후세인 못지않은 공공의 적으로 인식하는 미국 관객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순수한 가족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의 말처럼 “돈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고 돈을 나누기 위해 부를 추구했던” 이종만씨는 어쩌면 제3의 길을 주창한 학자들의 모토인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혹은 빌 게이츠가 제시한 ‘창조적인 자본주의’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 기업가의 전형이었다. 또한 평생 남을 미워하지 않는 법을 수련했고 “외부의 통합보다는 마음속의 통일을 먼저 이루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도 남과 함께 나누고 싶은 귀한 교훈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보다 개방적인 사회로 나아갈 때, 굶어죽는 국민보다 체제 안정을 우선시하는 지도층이 바뀔 때, 탈북자들과 정치범 수용소의 숫자가 줄어들 때 김씨의 이야기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순수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달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감스럽게도 막상 당사자인 김씨는 이런 사항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김씨는 현재 이종만씨의 일생을 다룬 또 다른 장편 다큐를 준비 중이며 BBC 제작 북한 다큐멘터리 ‘크로싱 라인’의 프로듀서와 접촉해 100만달러의 제작비를 조달받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월북 기업인 이종만 씨
<박원영 기자> w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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