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섬을 도는 요트, 요트 안에는 선장과 요리사가 있었다
남편의 옛 친구이자 함부르그 사업가인 크리스챤과 그의 처 아스트리드가 아주 멋진 요트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스트리드는 길고 똑바른 다리를 겸비한 체격도 물론이려니와 미모가 뛰어난 여자입니다. 처음 만난 날 집에 와서 거울의 제 얼굴을 쳐다보니 어쩌면 그렇게 밋밋하고 개성없어 보이는지. 그리고 짤막한 다리는 새 다리. 형편 없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물론 그건 정신 나갔을 때 얘기구요. 제 정신이 돌아오면 불구의 몸을 가진 사람들도 있는데 모든 것이 성한 것도 감사히 생각하지요. 위를 보자면 뭐 끝도 없지 않겠어요?
아스트리드는 결혼한 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자기 남편에게 새로 만난 애인인양 다정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하고 의아하게 쳐다보게 됩니다. 그 때마다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부부 둘다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마치 꽃을 기르듯이 말이에요. 그 여자는 미모 뿐 만이 아니라 요리 솜씨도 대단합니다. 한 번은 잡채 비슷하게 동양식 국수 요리에 새우를 넣고 만들었는데 커다랗고 둥근 그릇에 내어 놓으니 아주 멋져 보였고 양념도 동양식으로 아주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만두국을 내어놓아 제가 깜짝 놀래서, 아니 이런 것을 언제 배웠어요? 하고 물었더니 만두는 봉지에 포장해 파는 것을 수퍼마켓에서 샀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참 편하게 살 수 있지요? 함부르그에서도 동양식 만두를 그렇게 쉽게 살 수 있으니.
그리고 그 날 내어 놓은 후식은 산딸기를 요구르트에 묻혀서 까만 접시에 담아내었습니다. 까만 접시에 후식을 멋지게 내 놓는 것을 제가 바로 그 때 아스트리드한테서 배웠습니다. 이번 여행은 희랍의 수도인 아테네에서 며칠 묵은 후에 터기에 붙어 있다시피 한 코스 섬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아테네에 도착하여 남편 친구 요르고네 집에 묵으면서 아테네 구경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가수이자 연극배우인 마리아네는 실내 장식에 상당한 재주가 있는 여자라 4층으로 된 멋진 팔라쪼는(교외에 있는 성 혹은 샤또와는 달리 시내에 있는 대저택이 전성시대 이탈리아에 많았기 때문에 흔히 그냥 이탈리아 말 그대로 팔라쪼라는 말을 그냥 씁니다) 겉모양부터 근사한 집이었습니다.
입구에 거의 천장까지 닿는 거울 앞에는 엄청나게 큰 화병에 꽃이 핀 나무 가지를 담아 놓았더군요. 커다란 거실이 있었고 가구 하나하나에 안목있는 마리아네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이닝룸에 들어서니 벽에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2층은 모두 침실. 방마다 딸려 있는 욕실이 모두 큼직하고 화려 하더군요. 가장 인상 깊은 것은 3층의 반을 차지하는 마리아네의 의상실 이었습니다. 우리 집 리빙룸만한 크기였습니다. 공연 시에 입은 옷 중에서 유별난 것들은 몸통만 있는 마네킹 위에 입혀 놓았고 다른 옷은 종류에 따라 분류해 걸어 놓았더군요. 배우의 의상실이라 과연 달랐습니다.
4층에 있는 우리가 쓴 손님방에서는 멀리 아크로폴리스 유적이 보였습니다. 밤에는 조명을 켜서 더욱더 멋있어 보였습니다. 부엌이 있는 지하실로 내려오니 거기에도 한옆으로 식탁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식탁이 놓여 있는 벽 두 면에는 아주 멋들어진 그림이 그려져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나, 어쩌면 이렇게 멋이 있어요? 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두 세 번 같은 말을 반복 하며 그림을 쳐다보았습니다. 커튼이 내려
진 넓은 창으로 바깥의 풍경을 내다보는 그림인데 벽에 그려진 푸른 줄무늬의 커튼과 똑같은 천으로 식탁을 덮어 놓았습니다. 우중충 할 수 있는 지하의 부엌과 식탁을 아주 화려한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 마리아네의 재주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4층 건물에 지하까지 오르내려야 하니 그런 것을 생각해서 엘리베이터까지 놓았더군요. 저는 요르고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아직 은행에 남은 돈 있어요? 그는 싱긋 웃었습니다. 아테네에서 코스 섬 까지는 파도가 센 지역이라 크리스챤과 또 한 친구와 남편을 포함해 3명의 남자만 타고 가기로 했고 여자들은 아테네에서 코스섬까지 비행기로 가서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 섬에 마침 클럽 메드(club Med)가 있어서 우리는 거기에 가 있기로 했습니다. 클럽 메드는 손님들의 여러 가지 운동이며 관광을 모두 주선하고 보통 음식도 썩 잘해놓는 평이 있기 때
문에 그 곳으로 정한 것입니다. 아스트리드는 아들 그리고 다른 한 친구와 함께 모래사장에서 멋들어진 체격 과시를 하며 태울 생각이었고 저는 우선 며칠 더 시간이 있으니 남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활쏘기도 해보고 수중 체조를 배우는 그룹 에도 끼었습니다.
다음날에는 그 섬에 있는 희랍의 유적을 구경 하기 위하여 관광 그룹에 끼어 다녔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단체로 다니며 설명 듣는 게 제일 잘보고 배우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먼 섬에도 상당한 유적이 남아 있어 그 옛날 희랍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는지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클럽으로 돌아오느라 멀리서 산비탈을 내려오는데 마침 그 때 해변에는 엄청나게 큰 요트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와! 소리를 외치며 시선이 그 곳으로 쏠렸습니다. 저는 그 배가 크리스챤과 아스트리드의 요트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는데 모든 돛이 다 올려져 있으니 정말 더 커보이더라구요. 제가 그 배를 탈것이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우리 다 동지인데, 어쩐지 저 혼자 그 호화스런 요트를 타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속으로는 갑자기 우리 모두가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스트리드와 어린 아들 그리고 저는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돛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요트를 영화에서나 보았지 타 보기는 처음이라 흥분하여 가슴이 뛰기 까지 하였습니다. 고무 보트를 타고 요트 까지 갔습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의 모래까지 환히 들여다보였습니다. 크리스챤과 남편이 우리가 배에 오르는 것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티크 나무로 된 갑판에 올라서니 호스를 끌어다 주며 우선 발의 모래를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약간 온기가 있는 물이었습니다. 야 호화판 요트라 벌써 이런 것부터 다르구나. 말도 마, 얼마나 굉장한 배인지 몰라 옆에 서있던 남편이 한 말입니다.
선장과 요리사 그리고 시중을 들어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내부 구경이 시작 되었습니다. 항해를 위한 최신 장비를 갖춘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 하나하나가 값져 보였습니다. 지을 때 돈을 하나도 아끼지 않은 것이 보이더군요. 내부가 모두 좋은 집의 실내 가구처럼 빈틈없이 공간을 이용하여 짜여 있었고 침실이 4개. 그 외에 직원들의 침실이 있었구요. 주인의 침실로 들어섰을 때, 와! 하는 소리가 저절로 그만 나와 버렸습니다. 보통 집 침실만큼 큼직하였고 벽에 짜여진 장의 시설이 무척이나 화려 하였습
니다. 왠만한 집도 그렇게 못해놓고 사는데요. 배의 내부를 그렇게 까지 차려 놓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는 아주 지대한 관심을 갖고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다른 객실은 조금 적지만 모두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갑판 위로 올라와 앉으니 스튜어디스가 우리에게 음료수를 갖다 주었습니다. 남편은 거기서도 이것 봐라 저것 좀 봐라 하며 저에게 보여 주느라 바빴구요. 이런 것 하나하나가 다 얼마나 비싼지 알아? 마치 세일즈맨처럼 설명했습니다. “이러니 웬만한 집보다 더 비싸지! 저도 거들었습니다.저는 그 널직한 갑판 위에서 수십 명을 데리고 파티를 해도 족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 덕에 정말 좋은 구경 하는구나!’때로는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배를 정박 시키고 수영을 하기도 하고 그 섬의 주위를 유유하게 도는 3일 동안 매일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두고두고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끼 마다 하나나 두 가지만 딱 준비하는데 그 좁은 부엌에서 참 잘도 만들더군요. 그 영국인 요리사의 하는 말이 크리스챤은 비용의 제한을 주지 않아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지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무척 마음이 편하다고 하였습니다. 해물 샐러드, 싱싱한 생선요리도 모두 꿀맛이었습니다.
하루는 부드러운 테라곤(terragon-허브의 일종) 향이 나는 닭고기를 넣은 파스타를 서브 했는데 어찌나 맛이 있는지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닭고기를 양념하여 사흘 동안 재워 두었다는 군요. 어머나, 사흘이나요? 저는 고기나 생선을 양념에 재워도 혹 상할까 두려워서 이틀 이상 넘을라 하면 호들갑을 떨며 익혀 두는데! 그렇게 연하고 맛이 잘 배인 닭고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크리스챤은 시간만 되면 지중해 방방곡곡이며 캐리비안으로 항해를 다녔습니다. 그래도 함부르그에서 돈 버느라고 씨름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배를 안탈 때 그 잘하는 요리사를 왜 함부르그로 데리고 가지 않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호사는 남이 부러워하는 귀중한 보석이나 덩그렁한 집보다도 매일 맛있게 해주는 요리사를 데리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 했으니까요.
남편은 물론 그 먹으면 금방 없어져 버릴 것을 가지고...... 라며 저에게 정신이 좀 나간 사람이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 멋들어진 요트, 거기다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요리사가
있으니 저에게는 더 없이 좋은 휴가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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