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롭고 다양한 음악들 많이 출현할수록 좋아”
지난주 아시아소사이어티 공연을 포함해 미 동부지역 5회 순회공연을 통해 실험적이면서도 수준 높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국악을 선보인 토리 앙상블. 정상급 국악인들과 뉴욕의 뮤지션들이 모인 이 밴드의 단장 겸 음악 감독인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씨는 새만금을 포함한 갯벌들은 개발하지 말고 그냥 보존해야 한다고 믿는다.
효용성이라는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며 자연을 인위적으로 재편하는 것은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종의 다양성’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생명 역시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대부분의 문화인들이 이 같은 의견을 공유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문화계에도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현상이 팽배하고, 뭔가 하나 뜬다하면 우르르 몰려가는 한탕주의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 특히 여전히 문화를 정치나 경제에 종속되는 하위개념으로 규정하고 대중을 조종 가능한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문화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허윤정씨는 “새롭고 다양한 음악이 많이 출현할수록 좋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하는 다국적 뮤지션들을 모았지만 공연을 본 관객들이 더 주목한 것은 ‘새롭고 다양한’이라는 개념에 대한 허씨와 토리 단원들의 해석이다. 우선 이들은 “이것이 새로운 사운드”라고 우기려 들지 않는다. 실제로 그렇게 규정할 만한 딱 부러지게 완성된 형태의 음악도 아니다. 또한 억지로 섞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기량껏 알아서 연주한다. 어떤 부분은 익숙한 우리 가락이고 어떤 부분은 프리재즈와 60년대 아방가르드 음악을 연상케 한다. 어떤 파트도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남의 음을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인다. 목에 쑥
넘어가지 않고 걸리지만 오래 씹을수록 맛이 나는 음식같다.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라는 컨셉의 음악일수록 오히려 멜로디가 쏙쏙 귀에 들어오는 경험을 했던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 있지만 이것이 명민한 음악감독인 허씨의 전략이다. 최근 몇 년간 급증하고 있는 이른바 퓨전 국악 밴드의 상당수는 시류에 편승하는 면이 적지 않았다. 한마디로 전통 악기로 팝을 연주하고 미니스커트 입고 국악을 연주하면 새롭다고 인정받는 풍토가 생겼다. 그런 면에서 허씨는 오히려 엄격한 전통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2천년 이상 존재하고 발전하며 한 민족이 즐겼던 음악이다.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어떤 관객도 국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자신한다. 국악을 전달하려는 시도 중 하나가 토리인 셈이다.
또한 토리의 공연은 70분 동안 인터미션은커녕 곡사이의 막간도 없이 논스톱으로 진행된다. 대단한 자신감과 뚝심이다. 그만큼 공연의 스펙트럼이 넓고 연주의 층이 두껍다. 유럽에서 ‘천사의 목소리’라고 극찬한 강권순씨의 노래와 민영치의 장고, 네드 로텐버그의 관악가, 에릭 프리
드랜더의 첼로, 사토시 다케이시의 타악은 마지막 순간까지 끈기 있게 관객들을 몰아가 마침내 기립박수와 브라보(혹은 좋다)를 참지 못하고 외치게 만든다.
허윤정은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부수석으로 활동하다 98년 이후 거문고 전문 연주자로 다양한 협연 활동을 세계 각지에서 해왔다. 연극계 원로인 아버지 고 허규씨가 설립한 북촌창우극장의 예술감독직도 맡고 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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