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볼 수 없었던 세계, ‘메이플 스토리’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멋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전사마을, 궁수마을, 도적마을, 마법사마을로 떠나기 전에 여러분은 바로 이곳, 메이플 월드에서 앞으로의 여행을 위한 힘과 지혜를 길러야 한답니다.”
58개국 수많은 회원들이 즐긴다는 메이플 스토리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저시력인 우리 아이가 빠져있는 인터넷 게임으로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할 임무는 아들의 전사가 키우는 애완동물, 시베리안 허스키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원래 인형이었던 애완동물은 생명수를 먹고 살 수 있는데 그 생명수가 다 닳아 며칠 전 다시 인형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우선 네이버 검색창을 두드렸다. “어떻게 죽은 애완동물을 살릴 수 있나요?” “생명의 물약을 구해야 합니다” 첫번째 답이었다. “어디서 생명수를 구하나요?” “캐쉬샵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그리고 요정에게 주문장을 주어야 해요.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북쪽 고원지대에 위치한 전사마을에 있는 성인인 ‘주먹펴고 일어서’를 찾으세요. 그가 당신을 도와줄 거예요”
오호라, 이건 옛이야기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군 그래. 무언가가 결핍된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난다. 숱한 고통과 위험의 순간을 겪으며 주인공은 자신의 힘을 키워야만 하는데 그 길에서 어떤 도움을 주는 조력자를 만나게 된다. 그가 알려준 주문이나 도구는 마지막 고난을 헤쳐나가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반드시 자신의 힘과 지혜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어느덧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치른 주인공은 더 이상 결핍되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내면의 힘이 충만한 강한 인물로 변모해간다.
나는 이런 옛이야기의 공식이 인터넷 게임 속에서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물론 곳곳에 교묘한 상업적인 장치를 숨겨두었지만.
우리의 옛이야기 중에 ‘연이와 버들잎 도령’이 있다.
연이는 친 어머니가 죽은 뒤 계모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고생을 한다. 어느 겨울 날, 새엄마는 산에 가서 참나물을 뜯어오라고 했다. 산에서 길을 잃은 연이는 동굴을 발견하게 되고 별천지처럼 아름다운 그 안에서 버들잎 도령을 만나 참나물도 얻고 생명수도 얻는다.
겨울산에서 번번이 참나물을 뜯어 오는 연이를 의심한 계모는 그의 뒤를 밟아 동굴문을 여는 주문을 알게 되고, 급기야 버들잎을 죽이고 그곳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다시 동굴에 온 연이는 버들잎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불현듯 물병을 받은 일이 생각났다.
하얀 병의 물을 뿌리자 살이 돋고, 빨간 병의 물을 뿌리자 피가 돌고, 파란 병의 물을 뿌리자 버들잎이 다시 숨을 쉬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비를 관장하는 선관인 버들잎 도령과 연이는 함께 무지개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나약하고 순종적이었던 연이는 혹독한 시련 앞에 버들잎 도령을 만나면서 점점 자립적이고 성숙한 인물로 변화해 드디어 그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특히 나의 마음을 깨우치는 인물은 연이를 혹독한 겨울산으로 내모는 새엄마다.
우리는 때론 아이들에게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새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는 자애로운 엄마의 또 다른 이면일거다. 결핍된 존재야말로 무언가를 찾아 나설 수 있고, 그래야만 스스로 힘과 지혜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에…. 이것이 바로 옛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아닐까.
이미경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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