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랜친구 발터의 집
3월 말 남편의 오랜 친구 발터의 생일잔치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처인 칼라는 옛날 옛적에 남편의 비서였습니다. 그때 남편의 친구인 발터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한 동안 지하실을 파고 실내 수영장을 짓는다고 일 년 넘게 공사를 하더니 드디어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었습니다.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청년이 샴페인 잔을 건네주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샴페인을 젝트(sekt)라고 부르는데 하여튼 프랑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마신다구요. 그저 누구네 집에 가면 우선 무조건 젝트를 내 놓습니다. 사실 샴페인은 프랑스의 샴페인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만을 말하는 것 아시나요? 손님의 반은 그 집을 드나들면서 전에 만나 본 사람들이었습니다.많은 손님들이 도착하자 주인을 앞세우고 완성된 수영장을 보러 내려갔습니다. 운동으로 사시사철 수영을 하기 위하여 실내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상당히 큼직한 수영장 옆은 흐린 베이지색 대리석 타일로 하고 바닥은 걸어도 미끄러지지 않는 약간 질감이 있는 타일을 깔았습니다.
날씨가 쌀쌀할 때 춥지 않도록 바닥에 온방 장치를 했더군요. 어머나,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수영장이라고 할까요? 그런데서 한다면 수영이 더욱 즐거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수영장의 천장은 거의 거울 같이 반들거리게 칠을 하여 천장이 훨씬 높아 보이더군요. 뿐만 아니라 칼라가 그린 커다란 그림을 4개나 걸어 놓았고 조명 장치를 잘해서 아주 멋들어져 보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야, 멋있네를 연발하며 구경하였습니다. 제가 또 하나 눈여겨 본 것은 그 수영장이 지하실에 있는데요, 그 바깥쪽의 땅을 좀 파서 그냥 마당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수영장에서는 지하실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초대된 손님은 한 40명 정도였습니다. 그 집에 오는 손님들은 대개 함부르크에서 그럴 듯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부부는 사교계의 소식이 날 때 신문에 가끔 등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는 그 부부를 볼 때는 아이, 유명하신 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 집의 파티에 온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파티를 할 때 모두들 음식은 파티 서비스에서 시켜오고 사람을 고용하여
서브 하게하여 주인도 손님들과 함께 사교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주인 여자는 부엌에서 손님들 치닥거리하느라고 땀을 흘리며 허둥대기가 일쑤인데요. 제 얘기 같네요. 주인도 손님과 다름없이 유유하게 함께 즐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파티다운 파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큼직한 꽃다발을 몇 군데 멋지게 장식으로 담아 놓았고 사람들이 서서 기대거나 혹은 술잔이나 먹을 것을 놓을 수 있도록 높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프지도 않은지 모두들 마냥 서 있었습니다. 남편은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유머가 있어 잘 떠들고(그것도 이만 저만한 재주가 아니에요) 파티에서 제일 끝까지 있는 것을 좋아하지요. 저는 사실 별로 말이 적은 편이라 그런 모임에 가면 옆 사람과 대화를 하도록 지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그날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은 고급 주택가인 엘브쇼세(Elbchaussee) 라는 길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 러카나르(Le Canard 프랑스 말로 오리)의 요리사 알리 귕게르모와 그의 조수들이었습니
다. 요리사와 3명의 조수가 와서 술도 서브하고 7코스의 음식을 조금씩 담아 서브 하였습니다. 바삭거리는 토스트 위에 서브한 연어는 불투명 하면서도 말간 것을 보니 살짝 겉만 익힌 것 같았습니다. 어찌나 연한지 입에서 금방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도 연어를 익힐 때 아주 조심해서 겨우 익은 듯이 익히지요. 연어는 너무 익혀 단단하면 맛이 없거든요. 모두 적은 접시에 담아 서브 하였습니다. 좀 있다가 다시 한 번 그릇을 돌려 원하는 사람은 더 청할 수 있었습니다. 크노들이라고 적신 빵에 양념을 한 후 덩어리를 만들어 익힌 것이 있는데 거기다가 버섯 소스를 곁들인 것이 다음에 나왔습니다. 여태까지 먹어본 것 보다 쫄깃하고 아주 고소하였습니다. 하나를 더 청했습니다. 웨이터가 술병을 들고 왔다 갔다하기 때문에 술을 좋아 하는 사람은 계속 마시는데 독일은 술 취해서 운전을 하면 그에 대한 벌이 혹독하기 때문에 부부 중에서 운전을 할 사람은 절제를 하더군요.
지진 흰 생선에다가는 보라 빛이 나는 양파를 볶아서 곁들여 내 놓았습니다. 그 후에는 오래 찜을 하여 연하게 만든 소고기에다가 호스레디쉬라고 매운 맛이 나는 뿌리로 소스를 만들어 함께 서브 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생선과 고기를 내놓을 때, 생선이 부담이 덜 가는 음식이라 먼저 내 놓지요. 빵꼬 묻혀 구운 양고기 가슴살은 파스닢(배추 뿌리 비슷하게 생김) 퓨레(곱게 갈은 것)를 곁들였더군요. 적당히 익혀 속은 분홍빛이 돌며 고기가 아주 연했고 달콤한 파스닢과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양고기는 소고기와 다른 독특한 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중화시키기 위해 약간 달콤한 들러리가 잘 어울리지요. 사이즈가 적기 때문에 파티에서 손님들이 뼈를 잡고 먹기 아주 편합니다. 단 값이 좀 비싼 것이 흠. 모두들 배부르다고 하면서도 양고기 담은 접시가 지나 갈 때는 배부른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음식을 몇 시간에 걸쳐 서브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나온 것은 감자칩 위에 양념한 염소치즈 얹은 것이었습니다. 말랑 거리는 치즈와 바삭 거리는 감자 칩이 아주 고소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치즈는 보통 빵과 함께 내 놓지만 모두들 배가 부를 테니 빵 대신에 감자 칩으로 대치한 아이디어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 파티에서 좋은 것을 보면 ‘야, 나도 한번 응용을 해 봐야지’ 생각 하고는 그 때만 지나면 잊어버리기가 일쑤랍니다. 치즈가 나오면 이제 주된 음식이 다 나왔다는 신호라고 생각 하셔도 됩니다. 치즈는 음식이 끝나고 후식 전에 내 놓는 음식이니까요. 후식으로는 라바브라고 약간 새콤하고 붉은 빛이 도는 기다란 야채(샐러리 비슷)를 잘게 썰어 설탕을 넣고 익혔고 그 위에 레몬 무스를 좁고 기다란 잔에 넣어 서브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요리사와 조수들이 나와 인사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박수갈채로 그들을 맞았습니다. 칼라와 아주 오랜 친구라고 제 옆에 서서 얘기하던 여자도 자기네 파티에 같은 요리사가 와서 해주었다고 하더군요(잘들 놀아!). 눈의 초점을 잃은 것을 보니 남편은 저녁 내내 신이 나서 물소처럼 마셔 댄 것 같았습니다. 말로는 항상 어느 정도 마시면 더 이상 마시지 말도록 신호를 보내라고 하지만 정작 그렇게 하면 중얼 중얼 불평만 하거든요. 자기가 부탁을 해 놓고도 하고 싶은 것을 제가 못하게 하는 것처
럼 말이지요. 독일 여자들은 손님을 초대할 때 그렇게 쉐프나 혹은 파티 서비스를 쓰지 않더라도 준비가 항상 철저하지요. 그리고 손님이 오기 전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쌕 웃으면서 인사를 합니다.
그 완전한 독일 여자들을 좀 배우려고 그렇게 노력을 하련만......
우리 집의 경우는요 저는 사실 음식 준비는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단 남편이 원하는 만큼 모든 준비가 완벽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우리는 파티 전에 머리 터지게 싸우는 일이 허다한 것이 흠. 그리고 저는 다시는 파티를 열지 않으리라고 맹세를 백번 쯤 하구요. 오는 사람들이 다 친구들이라 뭐 한 두 가지가 완전치 못해도 알아 볼 사람도 없는데. 왜 그리 독수리의 눈을 갖고 남에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보고 짚어내는지! 그렇게 적은 것 가지고 들추는 것은 보통 여자들의 일이잖아요? 끝에 가서는 항상 모든 것이 잘 돌아가 만족해하면서도 사소한 것 갖고 미리부터 사람 잡는 그 성격. 다 모르셔서 그렇지 그것도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가 그 집을 나왔을 때는 새벽 한 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아직도 일부 손님은 남아서 떠들고 있었습니다. 항상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습기 찬 함부르크의 싸늘한 밤공기가 맴 돌았습니다. 운전을 위하여 술기운을 깨워 주기에 안성맞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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