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성당으로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신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가십시오.”
고 김수환 추기경은 1987년 6.10 항쟁 당시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학생들을 체포하러 들어가려는 경찰과 맞서 끝까지 버텼다. 당시 신군부 독재정권으로 악명 높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고인의 빈소를 찾아 경건히 조의를 표하는 모습은 마치 수녀 앞에 무릎을 꿇은 장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대구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면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성직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사제서품을 받아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 1969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연소한 추기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권위적이거나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추기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난하고 헐벗고 학벌이 없어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장애인 사형수까지 거리낌 없이 만나 거리에 앉은 빈민들의 권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수도자들의 순결, 청빈, 노동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볼 때 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 모범이 될만 하다. 김수환 추기경과 같이 퇴폐한 시대에 칼날 같은 비판의 화살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갖춘 인물도 드물다 본다. 그의 선종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박창호/공인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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