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가까운 친구 하나가 오랜만에 친구 딸 결혼식에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56살의 나이 같지 않게 젊어 보이는 그녀는 지난번 크리스마스에 사두었던 굽이 제법 높은 신발을 신고 옷도 좀 화려하게 차려 입고 예식장에 갔다. 굽이 높은 구두 탓 인지 키도 더 커 보이고 날씬해 보여 본인도 아주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결혼식장 계단을 올라가다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는데 긴 바지에 높은 굽이 걸려 넘어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남들 보기 창피해서 아프지 않은 척 하고 결혼식장에 들어갔지만, 무릎에서는 피가 많이 나고 뼈를 다쳤는지 통증도 심하게 왔다.
그녀는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응급실을 찾았다. 엑스레이를 찍은 후 뼈에 금이 갔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다시 보니 무릎 근처가 퉁퉁 부어있었다.
환자 차트에 생년월일을 보던 의사가 “아주머니 어쩌자고 그렇게 높은 신발을 신고 다니세요?”하면서 기막혀 했다. “남이사... 보통 때는 괜찮았는데...”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뼈가 붙을 때 까지는 운전도 하지 말라면서 딱딱한 석회 덩어리로 꼼짝 못하게 다리를 기브스하며 감옥소 안에 묶어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자신의 신세가 처량 맞아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있는데, 평소에도 불난데 휘발유 끼얹는 선수인 남편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아주 자~알 한다. 일 저지르는 데는 아주 선수야...”
다음 말이 더 가관이다. “아니 구두를 신으시는 것이 아니고, 아예 높이 올라타고 다니시려고 하셨군요. 올라타도 그렇게 높이 올라타면 떨어져 다치는 것 삼척동자도 다 알겠네””
가뜩이나 다리는 아프고 불편한 데 어디 다쳤느냐고 묻기는 커녕 불난 가슴에 부채질하는 남편이랑 여태 어찌 살았나 생각할수록 섭섭하고 분했다.
며칠 후 신발장이 좀 빈 것 같아 어찌된 일인가 알아봤더니... 굽이 아주 높은 신발 3개를 남편이 재활용 용품을 수거하는 기관 픽업트럭에 주어 버린 후였다. 그녀는 화가 났지만 다시 곰곰 생각했다. 이제는 나이 먹어가는 것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맞다, 이제는 편한 신발을 신자. 편한 게 최고지... 뭐라고 했더라... 그래 효자 신발... 맞아 바로 그거...’
요즘 그녀는 굽이 약간 있는 편한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우리가 젊은 커플이라며 나이 잡수신 분들이 따로 앉아서
배려해주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얼마나 세월이 지났기에 마음은 아직도 30대인데 어느새 나이 먹은 사람들 틈에 끼어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결혼식 소식 보다 장례식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온다. 가끔은 혼자서 ‘아이고 나의 젊은 시절은 어디로 갔나’ 생각하면 공연히 원통하고 손해보고 산 것 같아서 가슴이 싸아 아파오고 눈물도 찔끔 나려고 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요즘 절실하게 느낀다.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이제는 마음도 몸과 나이에 맞춰 따라가고, 인정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에 쇼핑센터에 가면 아주 편안한 효자 신발도 한 켤레 사야겠다.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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