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와 중용은 그 뜻과 개념이 동일하다. 하지만 중도는 불설에서, 중용은 유교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불교의 근본 원리를 이루고 있는 중도는 즐거움과 괴로움, 있음과 없음, 상견(常見)과 단견(斷見) 등 어느 것이나 상대적으로 양 극단에 편중하지 않는 공명하고 평범한 진리로 중정(中正) 중로(中路)를 택하는 불교 기본 교리로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으로 부처가 되어 처음 설법한 초전법륜의 기초를 이룬 사상이다.
지나침과 부족함이 없는 중용을 선택하여 지혜와 덕을 주창한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 의해 정립되었고 정자, 주자에 의해 체계화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선 실학자 정약용에 의해 기초를 이루었고 서양에서도 일찍이 그리스의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성으로 과욕을 통제하고 지견(知見)으로 양극을 피하여 보편적인 진리로 중용의 덕론을 주창하였다.
여하튼 ‘중용’은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 중 하나로 유교 입문의 필독서로 중국 형이상학의 최고봉으로서 정착된 지 오래인 오늘날에도 정치, 외교, 경제, 사회, 경영과 처세를 비롯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인생지침서로서 경전임을 분명 밝히고자 한다. 예하면 (1)과속 운전은 사고의 원인이 되고 (2)과식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3)과욕은 이성을 마비시켜 판단을 흐리게 하여 모든 실패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과유불급(過猶不及), 과불미급(過不未及)의 옛 중심(中心)의 격언이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다시 말하여 한 가운데와 바르다는 뜻을 가진 중(中)은 모든 사물의 가장 중요한 중심이요 핵심(核心)이며 구심점(求心點)으로서 중심이 없으면 바로 서지 못하고 기울고 쓰러진다. 옛말에 “초동자(初動者)는 망하고, 중동자(中動者)는 흥하고, 말동자(末動者)는 후회한다”는 격언을 음미하면서 우리 주변 보편적 진리인 중도, 중용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무난하고 건실한 성공적인 삶이 되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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