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친구로부터 “아들이 죽었어, 아들이 죽었어” 라고 밑도 끝도 없이 울면서 외치는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를 건 친구의 또 다른 친구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한동네에 사는 아들 가족과 함께 저녁까지 잘 먹고 집으로 돌아간 그 밤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죽음에 대해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죽음이란 단어 자체를 사람들이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안 죽을 것처럼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으니 아마 죽음은 나에게도 무서운 단어였나 보다.
이미 많은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예화가 생각난다.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했더니 대부분의 성도들이 다 손을 들었다. 목사님이 다시 물어 본다. “오늘 당장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고 물었더니 아무도 없더란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들 한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배고파 죽겠다” “속상해 죽겠다” “추워 죽겠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더 낫겠다” 등등, 죽겠다는 말은 그리 쉽게 잘 하지만 실상 죽음은 저 멀리 있는, 나와는 상관없는 무엇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지.
나는 공원묘지에 갈 때마다 비석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비석들을 읽어보면서 이 세상에 온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가슴에 확인시키며 인생의 옷깃을 여민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죽음이란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죽음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
나를 만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오는 시간들을 준비하며 살아야지 하는 지혜가 떠오른다. 내 손을 다른 사람들이 잡을 수 있도록 따뜻하게 활짝, 그리고 더 크게 펴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 가슴은 뜨거워진다.
정영태/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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