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확실한 거짓말, 세 가지다.
첫째, 노인 분께서 하시는 말씀, “이제는 죽어야지.” 그러면서 속으로는 -토룡탕이 건강에 좋다는데 그것 좀 안 사주냐?-
둘째, 20대에 막 들어서는 아가씨가 하는 말. “시집 안 가고 엄마랑 살 거야.” 그러더니 20대 끝에 서게 되면 남자들 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셋째, 물건을 팔면서 장사 하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 “이렇게 팔면 밑지지는 않지만, 본전이에요.” 머리 속으로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40%가 남는구나, 다행이다.-
살벌해진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며칠 전 누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또 한 가지를 얻어냈다. “딸이 참 예뻐요” 하니까 아빠 되시는 분이 하는 말인즉, “시집 안 보낼 거예요.” 그 때 내 코에서 방귀가 나왔다. 내 뇌에서 상황판단을 하고 답을 내리기 전이다. 그리고는 그 말에 대한 답변을 한다. “20대가 되기 전에 아마 -누구에게 시집 보낼까- 생각할걸요?”
하지만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이 세상 삶이다. 예전 내가 세상 중에 확실히 존재했을 때는 꿈도 많았고 절망할 때도 많았었다. 현재 나는 정중동(靜中動)인 중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이러함은 물론 곁에 그 누구도 없을 경우에 한하지만 말이다.
요즘 나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세상 중에서 지내자면 체면치레, 인사치레 등등으로 내키지도 않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나는 외딴 섬과 같다 생각되는 곳에서 지내는 덕으로 그러한 고역을 겪을 필요가 없다는 자체부터가 감사인 것이다.
모두에게서 놓여져서 선한 거짓말이든 악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음이 감사이다. 모두가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거짓말은 안 할 수가 없는 듯하다.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일단 거짓말을 했으며 그 거짓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면 처음의 자그마한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것이 선의이건 악의건 말이다.
내가 국민학교,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에 국어책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소년이 우두커니 있자니 심심해서 장난을 치기로 했다. “호랑이가 나왔어요, 살-려-주-세-요.” 깜짝 놀란 마을 장정들이 몽둥이, 삽자루를 들고 쫓아왔다. 이 난리 광경을 본 소년은 재미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몇 번을 속은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호랑이가 나타났다. 소년은 온힘을 다해서 부르짖었다. “호랑이가 나왔어요, 구해주세요.” 이 소리를 들은 마을사람은 한결같이 -저 개구쟁이가 또 장난하는 거야- 라며 어느 누구도 나오지를 않았다. 종국에 소년은 호랑이의 밥이 되고 말았다.-
몇 십 년이 흘렀어도 이 이야기를 생각해낼 수 있음은 내게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해서 목숨을 잃은 소년이 거짓말을 하는 죄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에 오랜 세월 간직하며 지낸다.
김부순
버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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