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이 넘어 첫 손녀를 본지가 벌써 1년이 됐다. 30 넘어 얻었던 아들이 30 넘어 딸을 본 것이다. 요즘은 2주에 한번 손녀 보러가는 재미로 산다. 벽에 온통 사진을 붙여놔도 가서 보는 것만 못하니 한시간여 운전하더라도 보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의사를 표현하고 할머니 가방을 뒤져 립스틱이 나오면 바르는 시늉을 한다. 아들아이가 딸 챙기는 게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는 부산 피난시절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 내가 장마철 비포장 도로 진흙 속에 신발이 빠져 울고 있을 때면 언제 오셨는지 불쑥 나타나셔서 나를 업어주시곤 했다. 막내아들인 내가 7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수복 후 홀로 되신 어머니와 서울로 올라와 생활했다. 어머님은 어려운 살림 가운데서도 자식에 대해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셨다.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 대한 연민의정은 지울 수 없나 보다.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달려 온 이민생활 30년. 이제 아이들의 2세가 자라고 있다. 곧게 자란 아이들에게 감사를 해야겠다.
어제는 아들아이 박사학위 수여식. 이 벅찬 마음을 어찌 다 적을 수 있을까. 다음 주는 손녀 보러 가는 날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데이빗 조/ 리버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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