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란 세월은 한 개인으로 보나 사회로 보나 짧은 시간이 아니다. 유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겪어야 할 일은 웬만큼 다 겪었을 나이다. 철없던 시절 가졌던 환상이나 유치함은 모두 떨어버리고 성숙한 인격체로서 삶을 바로 볼 수 있을 만한 경험과 지혜가 축적된 시기인 것이다. 공자가 나이 40을 흔들림 없는 ‘불혹’으로 표현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한인들이 미주에 발을 디딘 지는 100년이 넘지만 본격적으로 한인사회가 형성된 것은 60년대 말 이후다. 케네디 이민 법안이 통과되면서 LA 올림픽 가에 조그맣게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지 어언 40년이 지났다. 그 동안 한인사회는 70년대의 두 차례 석유 파동과 90년대 초 부동산 불황, 1992년 4.29 폭동, 1994년 노스리지 지진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은 LA를 비롯한 미주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성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민 초기 쇠락해 가던 빈민가 구멍가게에서 출발한 한인들은 타고난 근면함으로 비즈니스를 키워나갔고 이와 함께 지역사회에 발전에 일조했다. 과거 백인들 전유물이던 윌셔 가는 이제 코리아타운 중심지로 변했고 빌딩 주인도 한인으로 바뀌었다. 하나도 없던 한인 은행들은 이제 10여개가 넘고 예금이나 대출 규모도 수십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일부 한인 의류업체의 연 매출은 수십억달러 규모로 커졌고 수많은 한인 2세들이 정치, 법조, 문화, 예술, 언론 등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40년 전 한인들이 미국 땅에 보따리를 풀었을 무렵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변화다.
지금 LA를 비롯한 미주 한인사회는 이민 사상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불경기로 고통 받고 있다. 수많은 한인들이 페이먼트를 못해 집을 빼앗기고 비즈니스는 매출 감소로 폐업위기에 놓여 있다. 은행들도 부실 대출 증가로 허덕이고 이 때문에 돈줄이 막힌 기업들이 휘청거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지금의 고통은 일시적인 것이다. 90년대 초 불경기와 폭동과 지진 등 악재에 악재가 겹쳐 많은 사람들이 절망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더 이상 LA는 희망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한인사회는 이 모든 악재를 극복하고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이 기간 한인 경제 규모는 어느 때보다 커졌고 한인사회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어떤 불황도 시간이 지나면 끝난다. 아직 피부로는 느껴지지 않고 있지만 각종 경제지표는 최악의 상황은 지났으며 느리지만 올해 말부터는 경기가 회복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봄의 영광은 묵묵히 겨울을 견디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는 한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잘 살아보겠다는 한인들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한인사회의 앞날은 밝다.
40년 전 LA 한인사회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 한국일보도 자그마한 첫 싹을 피웠으며 그 후 긴 세월 동안 한인사회 성장의 안내자와 동반자로서 역할을 하느라 힘써 왔다. 한인 사회와 함께 불혹의 나이를 맞은 한국일보는 보다 원숙한 모습으로 앞으로도 맡은 바 소임을 다 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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