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단테가 쓴 불멸의 고전 ‘신곡’ 중 지옥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실제 일어났던 정략결혼을 배경으로 한 비극의 주인공은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프란체스카는 첫눈에 반한 말라테스타 가문의 차남 파올로를 연모하면서도 두 가문의 이익을 원하는 어른들의 속임수에 의해 상속자인 장남 조반니와 결혼하게 된다. 형수와 시동생이 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오랜 시간 애써 숨기고 있었으나 키스 장면이 묘사된 책을 우연히 함께 읽다 자석처럼 이끌린 단 한 번의 키스로 사랑을 확인하는데 그 이후 간음한 죄로 비참하게 살해되어 애욕의 죄를 범한 영혼들이 형벌을 받는 지옥의 제2원(신곡 속의 지옥은 9층으로 나뉘어졌는데 각 층은 죄질에 따라 구별된다)의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떠돌게 된다.
“불행 속에 있으면서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큼 쓰라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첫사랑을 당신께서 그토록 알고자 하신다면 울면서 말하는 이처럼 이야기해 드리리다”로 시작되는 망령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은 단테는 이 지극한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느끼며 절절하고 비길 데 없는 시구절로 기구한 연인들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문학, 오페라, 교향시, 회화, 조각 등의 소재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현대조각의 길을 연 프랑스의 사실주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키스’(사진)는 긴 시간 지켜만 보던 연인들이 첫 키스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을, 대담한 움직임과 표현적인 감각을 통해 주변 공간마저 빛이 넘치듯 묘사하였는데 ‘영혼과 영혼은 연인의 입술 위에서 만난다’는 말을 이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진실이라고 수없이 다짐하는 말보다도 더 많은 마음을 보여주는 감추어진 표정 같은 이 낭만적인 로댕의 작품 ‘키스’는 우리가 지나온 청춘의 신기루 같았던 시간의 흔적 속, 아찔한 현기증 같았던 첫사랑, 첫 키스. 그 기억의 실체화이다.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다 커지고 괴롭히다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 질병처럼 다루기 힘든 열병이었던 첫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때로는 지우지 못할 상흔으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청춘은 사랑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풍화작용 속에서 우리는 어른이 되고 세상과 부딪히면서 그 강렬한 사랑의 울림들은 잠잠해진다. 프란체스코와 파올로의 사랑이 절절히 마음에 와 닿았던 시절은 가고 사랑의 이야기들은 이제 마치 다른 세상을 엿보는 것처럼 낯설며 영화나 문학이라는 오래된 코드를 통해서만이 말할 수 있는 비실제적인 것이 되었다.
사랑이 없는 삶은 시들하다.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고스란히 빈집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주받은 혼령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떠돌고 있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사랑은 슬픔이자 축복이며, 만나려는 갈망과 만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서로 입술을 맞대고 있는 로댕의 작품 ‘키스’는 되돌려 받을 수 없다면 훔쳐보기라도 하고 싶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꿈이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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