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렌지 글사랑에서는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의 ‘상처받은 자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한 강의가 있었다. 모처럼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순수한 열정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흥미롭게도 UC어바인 동아시아 학과 방문교수로 온 그의 연구 주제는 디아스포라 문학이었고, 그가 펴낸 비평집 역시 ‘낭만적 망명’ 이라고 했다.
최근 한국문학의 범주가 전반적으로 넓혀지면서 단지 한국어로 쓰인 작품에만 한정되는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문학의 변두리를 맴돌던 이민자 문학 또한 훌륭한 문학작품으로서의 성취를 이룬 것이면 얼마든지 문학비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글쓰기를 위해 자신의 상처, 더 나아가 타자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결국 우리의 삶과 글쓰기는 나란히 가는 것이기에 이곳에 살기 위해 겪어야 했던 이민자로서의 크고 작은 상처는 그대로 풍부한 문학적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날 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을 만났다. 그것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아름다운 본보기였다. 더구나 어린이 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어린 시절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한 소년이 어떤 독서 여정을 통해 영혼과 정신이 성장해가는 지, 그리하여 마침내 1995년 가장 아름다운 일본어로 쓰인 책에 주는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 상’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제 강점기,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일본 철도노동자로 흘러들어간 할아버지로 인해 그는 1951년 교토에서 재일 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가난한 환경 때문에 우리 말도, 일본어도 읽고 쓸 수 없었던 문맹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 준 것은 저녁마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준 막내아들이었다. 어떻게 열 살 무렵 이렇게 섬세한 문학적인 감수성을 가졌을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의 글에는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과장되지 않고 담담한 자기 성찰이 배어 있다.
그런 소년에게는 책을 유난히 좋아했던 두 형(서승, 서준식)이 있었다. 한 이불을 덮고 삼국지의 영웅들 이야기를 해주며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던 그들은 1971년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조국의 감옥에 갇히고 만다. 서경식은 그로부터 20여년 동안, 형들의 구명을 위해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한국의 감옥에 갇힌 형들과 주고받은 옥중 서한을 통해 마흔이 넘어서야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는 재일 교포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을 반대하며 살아온 자신을 일본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표현했다. 그처럼 식민지배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추방당하고 모어 공동체에서 축출된 무수한 디아스포라들이 이제는 넓은 광장으로 나와 서로 연대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을 ‘보편적 인간’에 다가서게 하는 길이라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제목 ‘소년의 눈물’이었다. 그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 ‘하늘을 나는 교실’ 중 “어린이들의 눈물은 결코 어른들의 눈물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에서 따온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통해 저마다 살아갈 미지의 길을 찾는 지도 모르겠다. 가난하지만 결코 용기를 잃지 않았던 동화 속 주인공 마르틴 타라가 “절대로 울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것처럼 소년 서경석도 그렇게 되뇌었을 것이다. 가난하여 글을 읽거나 쓸 기회를 갖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일 때, 그리고 19년, 17년을 감옥에 있으면서 목숨을 걸고 강제적인 사상 전향을 거부했던 두 형의 치열한 고통을 떠올릴 때에도…
이미경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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