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 창간41주년 특별기획
▶ 60여 샤또 참여하는 ‘보르도 술 전시회’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먹는 포아그라 거위간 요리
에비앙에는 일년에 두번 보르도(Bordeaux) 술 전시회가 열려서 여러 샤또(chateau)의 술을 맛보고 원하면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보르도는 프랑스 서쪽의 지방인데 그 곳에서 나는 술은 짙은 자주 빛이 나고 약간 탁한 듯 하면서도 비로드 같이 목을 타고 흘러 내려갑니다. 에비앙이나 이 주위의 동네에서 번갈아 가며 열리지요.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지역의 술이라 너무나 신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적은 양의 술을 생산하는 60여개의 샤또에서 자기네 술을 내 보이고 그 외에 에비앙이 소속된 이 옷 사보아 (Haut Savoie) 지방의 쏘세지, 프랑스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 하는 포아그라 (foie gras-거위간), 호두
기름, 잼 등등 맛이 있는 것들을 선보입니다.
남편이 함께 골프를 치면서 알게 된 옷사보아 지방의 부지사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초청장을 둘 얻었습니다. 한 번 가서 술을 사면 그 사람들이 항상 초청장을 보내 줍니다. 입구에서 나누어 주는 술 잔을 하나씩 받아 들고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원하는 술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르도 지방에서 여름을 지낼 때 가서 본 샤또의 술을 보면 무척 반갑기까지 하였습니다. 페트루스(Petrus), 마고(Margaux) 같이 너무나 유명하고 많은 양을 생산하는 샤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술이 없어서 못 팔을 정도로 유명하니 그렇겠지요.
이름과 상표, 술을 파는 사람의 인상까지 종합해서 쓱 훑어 보고 어딘지 끌리는 게 있으면 술잔을 내밀고 맛을 보겠다고 청합니다. 조금 따라주는 술을 잔 안에서 슬슬 돌린 후(공기와의 접촉을 위해서) 코에다 갖다 대고 깊은 숨을 들여 쉽니다. 술의 향기를 검사하기 위해서이지요. 그리고 한 모금 입 안에 담고 서서히 입안에서 우물거립니다.
혀끝의 맛뿐만 아니라 목으로 흘러내리기 전 혀 뒤편에서 느끼는 맛도 보아야지요. 그리고는 사고 안 사고를 결정합니다. 저는 가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막과 파리를 날리고 있는 막을 비교해 보며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 해 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술 맛 하나에만 달린 것은 절대 아니지요. 적당히 친절함을 보이며 술을 권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두 군데서 우리 입에 당기는 술을 몇 박스 주문하고 샤또 옷구종(Chateau Haut-Goujon)의 막에 이르렀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워 보이는 여자가 권하는 대로 술을 맛보면서 우리가 보르도 지방에서 지낸 얘기를 우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의 막은 갈 생각도 않고 거기서 아주 진을 치고 이 얘기 저 얘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저런 남 장사도 못하게 스리! 드디어 우리는 그 집의 술을 산 것뿐 아니라 다음에 오면 드링크를 한잔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차 한 잔 하자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다음해 봄에 마담 가르드가 다시 술 전시회 일로 에비앙에서 만났을 때 함께 온 딸과 드링크만 할께 아니라 아예 저녁을 같이 먹자고 초대를 하였습니다. 남편과 옛날 옛적 뉴욕의 아메리칸 엑스프레스에서 훈련을 같이 받았고 현재 제네바에서 살고 있는 스위스 친구, 졍(Jean)과 이탈리아 사람인 그의 처 테레사를 초대 하였습니다. 우리 옆집 노총각 로렌스도 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알고 마담은 선뜻 99년도의 대형(Magnum-보통 술병의 2배) 술병을 선물 하였습니다. 저는 마담의 포도주와 잘 어울릴 음식으로 메뉴를 짰습니다. 첫 코스로 샐러드에 겨자, 레몬주스, 오레가노, 올리브기름으로 드레싱을 만들어 무치고 위에 다가 지진 베이컨을 잘게 썰어 뿌렸습니다. 샐러드에 베이컨을 얻는 것은 이 옷사보아 지방식 이거든요. 베이컨은 미리 준비 해 두었기 때문에 서브 전에 오븐에다 살짝 데웠습니다. 그래야 제 맛이 나고 바삭 거리니까요. 메인 코스로는 오리고기를 준비 했습니다. 전날 밤에 오렌지 주스를 뿌려 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오렌지 향이 스며드는 것 뿐 아니라 고기가 아주 연하거든요.
손님을 앉혀 놓고 너무 오래 부엌에 나와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손님들이 오기 한 30분 전에 고기를 지졌습니다. 오리는 기름이 많기 때문에 다른 기름을 하나도 넣지 않고 껍질이 팬에 닿게 얹었습니다. 기름이 얼마나 빠지는지 지지면서 수저도 떠내어야 하거든요. 마늘을 저며 넣고 로즈매리를 줄기 채 넣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 가며 겉을 지졌습니다. 지지는 동안에 기름이 더 빠지도록 껍질에 포크로 구멍을 많이 내었습니다. 물론 살 까지는 찌르지 말아야지요. 그렇게 기름을 좀 빠지게 하여 껍질을 얇게 만들어야 보기도 좋고 맛이 있으니까요. 눌러 보니 아직 말랑 거려서 불에서 내렸습니다. 속이 완전히 익지 않은 표시니까요. 나중에 데울 때 조금 더 익는 것을 생각해야 하거든요.
고기 덩어리를 나중에 오븐에 넣을 수 있는 오발 형의 사기그릇에 나란히 담았습니다. 오리 고기의 기름을 지질 때는 어쩌면 그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지 거기서 나오는 기름은 버리지 않지요. 그릇에 담아 식힌 후에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양배추 같이 억센 야채 볶는데 쓰기도 합니다.
겉만 지져서 방 온도에 놓아둔 오리고기는 서브 할 때 야채를 준비 하면서 화씨 370도로 데워진 오븐에 15분 정도만 구우면 됩니다. 눌렀을 때 조금만 들어가면 거의 익은 것인데 그때 꺼내 두어야 10분쯤 후에 꼭 알맞게 분홍빛이 나고 아주 연하거든요. 거의 들어가지 않으면 벌써 너무 익은 것이니 주의 하셔야 합니다. 감자를 익혀 버터와 크림을 넣고 포크로 으깨어 접시의 가운데에 담고 오리 고기를 얇게 저며서 감자에 좀 기대도록 부채처럼 펴서 담았습니다. 색깔을 위해 호박과 당근을 감자 깎는 도구로 리본처럼 얇게 밀어 버터에 살짝 볶아서 옆에 곁들이고 그리고는 오렌지주스 졸인 것을 올리브기름과 섞어 고기 담긴 쪽에 뿌렸습니다. 모두들 음식이 술과 잘 어울린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혀에 닿는 짙은 포도주가 야생 열매의 여운을 남기며 부드럽게 사라지는 맛이 아주 좋다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술에 관한 책에서 읽은 것을 그럴 듯하게 얘기 하면서 건배를 한 것입니다.
마담과 그의 딸 코린(Corine)은 우리에게 술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재배하는 농부로서 얼마나 일이 많은지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포도밭이 딸린 샤또에서 산다고 하면 우리는 그게 너무나 멋있게 들리는데!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는 서양의 속담이 있듯이 알고 보면 다르지요. 마담의 남편과 그 두 아들은 포도 재배와 술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코린은 회계를 담당하고 마담은 손자 손녀들을 돌보아 주는 일과 매일 대 부대를 먹이기 위한 음식을 담당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여튼 마담이 우리 집에 온 첫날은 너무나 즐거운 모임 이었습니다. 그 후 매번 마담이나 그 식구들이 올 때에는 우리 집에서 으례 모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손님들 끼리 함께 잘 어울리면서도 특히 음식과 좋은 술을 즐기는 사람이나 혹은 마담의 고객이 될 만한 사람들
도 생각해서 초대 했습니다.
마담은 항상 우리에게 좋은 술과 집에서 만든 잼 같은 것도 선사 하였습니다. 저는 마담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반드시 자기네 술을 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줄까 봐서 조심 하였습니다. 그래도 올 때마다 술을 들고 오면 그 때마다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셔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답하였습니다. 우연한 대화가 우정으로 이어졌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좋은 친구로 가까워 졌습니다. 우리가 마담같이 인간적으로 정이 두터운 사람을 만난 것이 정말 얼마나 행운인가 하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김영자의 블로그: www.yongjakim.blo gs po t.com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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