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은혜와 감동이었다”는 것은 목회자인 저의 고백입니다. “기쁨과 치유, 힘들고 어려운 이민생활의 회복과 용기의 시간이었다”는 것은 우리 성도님들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지난 7월25일 밤 제1회 노형건 찬양부흥회를 마치고 난 후, 그 감동과 기쁨이 가득한 우리들의 결론적 대화였습니다.
이제까지의 부흥회 개념은 말씀 중심이었지만 노형건 찬양부흥회는 우리의 고정 개념을 깨뜨린 또 하나의 개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찬양 부흥회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목회를 20년 이상 했지만 부흥회의 개념은 말씀으로만 연관시켰었습니다. 노형건 단장님을 만나고 그의 뜨거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소명감, 그리고 그가 계획하는 찬양부흥회 계획을 처음 듣고 저희 교회에서 그 첫 시작을 하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렸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부흥운동과 영적각성의 핵심에는 항상 찬양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요한 웨슬레가 부흥운동을 일으킨 동기는 모라비안의 아름다운 찬양을 통해서 그 심령이 뜨거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8세기 중엽 조나단 에드워드가 영적각성을 일으킬 때도 영국 찬송의 대부로 불리는 아이삭 와츠의 찬양곡들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중엽의 찰스 피니도, 19세기 말의 드와이트 무디도, 20세기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아름다운 찬양을 통하여 부흥의 계기를 이루어왔습니다.
이번 노형건 찬양부흥회를 통해서 얻게된 영적인 축복은 너무도 크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첫째, 우리 교회적 입장에서 볼 때 큰 부흥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목회자인 저부터 찬양 가운데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체험하였고, 성도님들도 찬양의 기쁨과 용기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도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찬양 집회를 갖고 있지만, 이렇게 뜨겁고 열정적인 찬양의 기회는 없었습니다.
둘째, 21세기 시대적 입장에서 볼 때 찬양부흥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부흥회는 좋은 강사 목사님을 모시고 좋은 말씀을 통해서 ‘받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찬양부흥회는 ‘드리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노형건 단장으로부터 참석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셋째, 복음과 선교적 입장에서 볼 때 예수를 잘 알지 못하고 기독교에 거부감을 갖는 이웃과 형제들을 초청하여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부흥회였습니다. 찬양은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것처럼 찬양을 불렀던 바울과 실라의 착고가 풀려지는 기적이었지만, 찬양을 듣기만 했던 빌립보 감옥 안의 모든 죄수들의 착고도 풀렸고, 찬양을 들었던 간수에게도 ‘온 집안이 구원받는 기적’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노형건 찬양부흥회는 성도들의 이웃과 식구들, 또 오랫동안 전도하려고 기도하던 대상자를 거부감 없이 교회로 초청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제 그들이 LA 집회를 시작으로 북경과 서울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게 됩니다. 가는 곳마다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수고하신 노형건 단장님과 모든 찬양대, 수고한 모든 스태프 형제자매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권영국 대흥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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