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5분이다. 시간 맞춰 일터로 가려면 한 시간 동안 산보가 가능하다. 토요 새벽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가까운 레돈도 비치로 왔다. 공공 주차장 한켠에는 한 무리 건장한 중년 백인 남성들이 검정 스쿠버 다이빙 복장으로 훌렁훌렁 갈아입고 있다.
장마철처럼 제법 습기가 찬데다 하늘도 흐리다. 마음도 흐리다. 답답한 심정이라 탁 트인 바다의 풍경이 그리웠다. 막내는 지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다 깨다 할 터이다. 아이들의 이성문제는 부모가 전혀 개입할 수 없다. 큐피드가 어긋난 사랑의 화살을 쏘면 대책이 없음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실연의 상처는 깊고 깊어 견디기 힘들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게으름뱅이 막내는 7월 한 달 간 열심히 일을 했다. 은행구좌를 열어 주급을 받을 때마다 다음날 밝을 때까지 참지 못하고 즉시 은행에 예금했다. 차곡차곡 모은 돈을 가지고 8월 선교여행에서 돌아올 여자 친구와 데이트할 꿈에 젖어 있었다. 공짜로 줘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20만 마일 넘는 고물 캠리를 새 차처럼 청소를 했다. 꿈이 깨졌다. 낙랑 18세, 부풀대로 부푼 소년의 가슴이 산산조각이 났다. 사랑이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때도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혹독한 과정에 들어섰다.
아이들이 이성문제로 힘들어 할 때는 도와 줄 수가 없다. 몇 마디 말로만 위로해야 하니 온갖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고작 하는 얘기가 “나도 너만 한 나이에 그런 일을 겪었는데 정말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괴로웠다”이다. 조금 지나 안정이 되면 “파국이 이렇게 힘든 것을 알았으니 이성교제는 절대적으로 신중해야 한단다. 한번 사귀기로 결정한 후에는 헤어지자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라. 아픈 경험을 거울삼아 상대방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
머릿속이 온통 사랑으로 가득할 때는 비가 와도 좋고, 번개가 쳐도 스릴이 넘치고, 눈이 펑펑 쏟아져도 강아지처럼 기쁘고, 폭풍이 불어도 후련하다. 모든 것이 멋져 보이고 마음 한켠에는 무지개가 있고 기쁨의 선율이 흐른다. 게으름뱅이를 갑자기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하고, 외모를 청결하게 만들고, 단 한 마디의 말로 수십년 된 나쁜 습관을 단번에 버리게 할 만큼 사랑은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체험했다.
등이 몹시도 구부정한 할아버지는 짧은 반바지 수영복에 흰색 런닝을 입고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물가 모래밭에서 종종걸음의 뜀박질에 열중해 있다. 늘어진 피부가 뼈에 안타깝게 달려서 출렁일 정도로 노년이다. 동작 하나하나에 삶 그 자체를 사랑하는 열정이 드러난다.
토실토실한 사람들이 많이 아침 산보를 나왔다. 토요일 느긋한 잠자리를 떨치고 건강해지고자 저리도 열심이다. 집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은 듯한 거구의 몸집이 귀엽기조차 하다. 그들도 사랑했고, 사랑이 변하여 미워했고, 마침내 단념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모두가 한 때는 미치도록 사랑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뭔가를 사랑하고 있을 테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일상은 무기력하고 따분하다. 기쁨은 섬광처럼 왔다가 스러진다. 일상의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성 간의 사랑보다 더 멋진 사랑이 많음을 깨닫는다. 절대자에 대한 관심과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묵상하는 시간도 늘어난다. 신에 대한 사랑을 생각할 때는 매일이 평온과 만족과 자신감에 찬 은은한 기쁨이 있다. 오묘한 삶 그 전체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운무가 걷히며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는 인간의 자잘한 세상사를 희미하게 지우며 잊게 한다. 오직 뭔가를 사랑하는 것만이 생의 의미라고 일깨운다. 막내가 지금의 아픔이 큰 만큼 넓고 다양한 세상을 사랑하며, 그 오묘함을 느끼고, 깨닫고, 또한 아낌없이 누릴 것을 아침 산책시간에 빌어본다.
윤선옥 /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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