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이름을 남기고 싶고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는 본능과도 같은 마음을 반영한다. 천진난만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은 어린애들도 주위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곧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는 이 세상에 유명한 과학자도 많고 좋은 사람도 많지만 유명한 과학자이면서 좋은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연구생활을 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너무 이기적이고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하는 말 같았다. 홀로 월남해서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수많은 가난한 환자를 정말 헌신적으로 돌본 장기려 박사는 기자가 ‘유명한 의사’라고 불렀을 때 유명한 의사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좋은 의사’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다. 그분은 ‘좋은 의사’를 ‘유명한 의사’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는 말이 되겠다.

좋은 사람이 되는 조건은 참 많겠지만 기본 조건의 하나로 정직함을 들고 싶다. 일본의 주부 작가로 ‘빙점’이라는 소설로 유명해진 미우라 아야꼬 여사의 남편은 그녀가 배달된 편지에서 소인이 찍히지 않은 우표를 떼어서 다시 썼다고 꾸지람을 했다 한다. 소인이 찍히지 않았지만 이미 사용된 우표를 다시 쓰는 것은 거짓이라는 이야기다.

언젠가는 들통이 나서 처벌받을 것을 알았다고 하면서도 천문학적인 돈을 사기해 먹은 폰지 사건의 주인공 버나드 메이도프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정직한 사람도 있으니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맛나는 곳이다.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지 못하는 잠깐 다녀가는 이 세상에서 가까운 친구, 아니 최소한 가족에게 만이라도 좋은 사람의 자국을 남기고 떠난다면 괜찮은 인생이라 생각된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