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짐을 싸들고 돌아온 아이들은 딱 사흘 동안만 반가웠다.
세 끼니 먹거리를 대는 일이며 올빼미처럼 밤에 활동하는 아이들하고 지내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여닫는 문소리에 나의 단잠은 토막 나기 일쑤였으며 그럴 때마다 놈들을 기다리던 심정과는 다르게 돌아갈 날을 슬며시 손가락에 꼽아보기도 했다.
긴 방학이 끝나고 딸아이가 먼저 기숙사로 돌아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살림을 해본 아이는 가방 싸는 솜씨가 꽤 늘어 있었다. 물 먹은 붕어모양으로 이것저것 챙겨 넣어 가방 옆구리가 불룩불룩해져 갔다.
딸아이의 모자란 물품 구입을 위해 쇼핑에 나섰다. 팔짱을 끼고 다니며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는 부전공 과목이며 펼치고 싶은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즐거웠다. 철부지로만 여겨지던 아이가 좀 성장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백화점은 어느새 가을 물건 일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아이는 작년에 사준 부츠도 있는데 목이 긴 부츠들이 병정들처럼 서있는 진열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뉴욕의 겨울에 걸 맞는 목이 긴 브라운 부츠를 사는 걸로 쇼핑이 일단락 지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할머니는 고무신도 아까와 남이 보지 않는 들길 같은 데서는 신을 벗어들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오, 하나님, 가엾은 왕할머니! ” 아이는 마치 전설을 듣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왕할머니가 고무신도 아껴 신고 들길에 떨어진 나락 한 개, 멍석에서 튀어나간 콩알 하나도 아까와 하며 살뜰히 공부시키고 키워낸 자식들, 그 줄기 따라 태어난 아이가 철따라 옷 따라 신발을 갈아 신으며 폭신한 걸음걸이로 살 수 있는 게 그 왕할머니같은 분들의 덕이라는 걸 아이가 알 리 있겠는가.
김용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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