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여행 중 이집트의 시내산을 오를 때다. 한밤중에 출발해 동틀 무렵 산꼭대기에 이르는 코스였다. 어둠 속에서 불쑥불쑥 어설픈 발음의 한국말이 들렸다. “낙따 따요!” 제법 가파른 산을 오르다 지친 사람들에게 낙타의 푹신한 등을 권하는 이집트 청년들의 호객행위였다.
힘겨운 산행 끝에 그 날 새벽 나는 성경에 나오는 선민 이스라엘의 최대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그분의 뒷등도 보았다는 곳에 올랐다.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 33:23). 정말 희뿌연 구름이 뾰족한 바위 허리춤을 손깍지 끼듯 꼭꼭 두르고 있어 금세라도 하나님께서 우렁찬 목소리를 울리며 내려오실 것 같았다. 시내산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 남쪽에 있는 해발 2,285미터 높이의 산이다.
이집트 탈출 후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방랑길을 담은 광야 곳곳도 들렀다. 성경을 펴 일일이 지명을 확인하는 ‘현장 검증’도 흥미로웠다. 이스라엘 나사렛 동네에서는 예수라는 분이 어릴 적 뛰어놀았음직한 골목길도 다녀본 데다 갈릴리 호수 위에서 가진 선상 부흥회는 차라리 꿈만 같았다. 특히 예루살렘은 도시 전체가 성경 이야기의 무대를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듯했다.
‘이스라엘’은 히브리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새 이름이었다(창 32:28). 그때 얻은 국명이 오늘도 신문 국제면을 오르내린다. 성경 속의 수많은 지명은 지금도 확인 가능하다. 성경은 에덴동산이 힛데겔과 유브라데(창 2:14) 어귀에 있었다고 말한다. 힛데겔은 티그리스 강, 유브라데는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킨다. 세계사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불린 이 지역이 최고(oldest)의 농경문화와 고대 문명 발상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현재로 보면 에덴은 이라크 근방이다.
‘신화냐 사실이냐’로 자주 논란을 일으켜온 노아 대홍수 사건에도 역사적 지명이 등장한다. 노아의 방주는 홍수 후 터키와 아르메니아 국경 근처의 아라랏산에 머물렀다고 한다(창 8:3-4). 1974년 NASA의 인공위성 사진에 아라랏산 정상 부근 빙설 속에 배 모양의 검은 물체가 찍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누군가가 끌어내리지 않은 이상 아직도 거기 ‘정박’해 있을 것은 당연하다.
성경과 달리 순전히 지어낸 ‘진짜 신화’들은 어떨까. 널리 알려진 중국 창조신화만 해도 시공간의 배경을 갖춘 역사성의 기미는 전혀 없다. 여왜라는 이름의 여신이 긴 새끼줄을 흙탕물 속에 넣고 휘젓다가 그것을 위로 뿌렸다. 그러자 진흙이 방울방울 떨어져 인간으로 변했다고 한다.
전 세계 여러 민족의 창조신화들에도 성경과 부분적으로 유사한 대목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저 단순한 우화체로 그친다. 성경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 이후에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실제 역사가 나온다. 다른 인류의 신화들에는 사실로 뒷받침될 만한 후속 사건들이 없다. 성경은 유일하게도 인류사의 ‘처음’을 상세히 담은 사료다. 그 후의 역사는 그 처음 사건들과 모든 장소, 모든 순간에 유기체의 실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당신이야말로 고대 역사의 가장 생생한 유적지다. 성경에 나오는 첫 사람 아담의 타락과 죽음의 수천 년 묵은 유전자를 당신 또한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보다 더 분명한 초기 인류사의 ‘고고학적’ 증거가 또 있을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롬 5:12).
안환균 <남가주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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