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의 무더웠던 어느 날 집에서 책을 읽다가 꾀를 내어 동네 도서관으로 피서가자 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집을 나섰다. 방학 때인지라 도서관은 만원이어서 오후 시간에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몇 번을 빙빙 돌고 나서야 겨우 아이들이 공부하기에 딱 좋은 자리 하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앉아서 가져온 책을 펼쳤다.
몇 년 전부터 저절로 익혀진 속독 덕분에 모든 책을 빨리 읽게 되므로 중요한 대목이나 문구를 메모 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그날도 책 한권에서 무려 80여 가지를 발췌하여 메모를 해나가던 중 문득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원래 글씨가 달필은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글씨체가 졸필로 “내 글씨 맞나” 할 정도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모든 문서가 컴퓨터 화 되어 가고 아이들의 학교 숙제까지도 컴퓨터 프린트 물로 제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까지도 친필이 아닌, 이메일의 홍수 속에 떠내려 버린 지 오래다.
나는 직장에 다닐 동안 고객들에게 감사 카드, 생일 카드, 경조사에 관련된 내용들의 카드를 보낼 때엔 항상 직접 손으로 써서 보내 드리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보낸 카드가 수만 통에 이른다. 많은 분들이 친필로 쓴 카드에 무척 감동 받았노라는 말씀을 많이 해줬다.
몇 달 쉬었다고 중년의 나이에 글씨체가 벌써 해이해진다면 어릴 적부터 컴퓨터와 더불어 자라야할 우리 자녀 세대의 앞날은 어떨 것인가? 쉽게 한다고 시간 절약을 위해서 후딱 몇 줄로 때우는 문화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에 정서의 꽃이 비집고 싹이 틀 여유라도 있을까 싶다.
결혼 전 연애 시절에 내게서 받았던 편지들을 남편은 아직도 간직하고 나 몰래 다시 읽고 또 읽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는 한편 감사의 마음도 든다. 20몇 년 전의 일이니 분명히 빛바랜 낡은 편지이겠지만 어디다 두었냐고 물어 보지 않았다.
오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해병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고 있을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야겠다.
한나 양/ 풀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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