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다시 선 것은 이달 하순에 있을 독일 총선거를 앞두고 곳곳에 대형 사진의 입간판이 즐비해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는 날이었다.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므로 올해는 장벽이 뚫린 것으로 보면 20년, 통일독일이 완성된 때로부터는 19년이 되는 해이다.
2003년 4월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에 있는 훔볼트 대학에서 ‘분단 한반도와 통일독일’이라는 주제로 세계 한민족포럼이 열렸었는데 그 때는 세계 각처에서 몰려온 시위대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했으나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 날은 마침 다음 날에 있을 베를린 마라톤을 준비하느라 광장이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고 날씨마저 북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화창한 오후였었다.
독일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유지 명목으로 4,000명의 독일군을 파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주 독일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나토군이 아프간을 공격하면서 민간인 수십명을 사망케 한 사건이 발생하자 국내의 철군 요청과 함께 이슬람 테러조직에 의한 폭탄테러가 발생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27일에 있을 총선이 끝날 때까지 국내 치안에 비상이 걸려 있는 중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사민당(SPD)과 함께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연정을 이끌어온 기민당(CDU)의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세계 금융위기의 고비에서도 이를 침착하게 대처해 옴으로써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심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 아프간 공격에 대한 여론의 악화로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며, 동독 출신의 첫 통일 독일의 총리이고 전후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인지가 독일인들의 관심이 되고 있었다.
유럽이라고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지난 7월 현재 유로지역 16개국의 실업률은 9.5%, EU 27개국의 실업률은 9.0%로 1999년 5월 이래 최고의 수준이라는데 현지에서 발행되는 한 교포신문은 지금 경제위기에 몰린 수백만 독일시민들이 단기간의 현금이용을 위해 줄서서 전당포를 찾고 있어 전당포가 때 아니게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국민들은 정치적인 변화나 경제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차분하고 소박하며 참을성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지나치리만치 무뚝뚝한 얼굴에서도 자신감과 평온함이 넘쳐 보였다.
무엇이 오늘 동구권을 포함해 유럽인들을 저렇게 자신감 있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유럽의 통합 때문인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여러 나라가 몰려 살면서 숱한 침략과 수탈 속에 살아온 유럽이 EU라는 느슨한 통합체를 결성함으로써 적어도 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과 함께 경제적인 통합에 이어 최근에는 문화적 통합까지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뉴욕과 워싱턴에서는 지금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긴박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느꼈던 그 한없는 자괴감이 되살아난다. 왜 우리는 아직도 통합을 못하고 있는가? 통합은 이제 살아나가는 방법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조건인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독일통일이 유럽의 안정을 이끌었고 EU 탄생의 단서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통합도 민족의 번영을 뛰어 넘어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여는 기본 열쇠이자 시작이다.
김용현 /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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