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협회에서 주관하는 가을 문학 세미나가 있었다. 언론의 위력은 대단하여서 후원하는 신문에 공지가 나가는 날이면 전화문의가 더욱 빗발쳤다. 그 덕에 성황리에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가을이어서 사람들이 더 감성적이 된 것인지 평소에도 글쓰기에 관심들이 많았는지 공부의 열기는 뜨거웠다. 긴 시간의 공부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릴 줄은 몰랐다. 공부와 담쌓은 나는 새삼 한국인의 학구열이 놀라웠다.
주최 측의 회장이니 행사 내내 자리를 뜰 수가 없었고 꾀를 부릴 수도 없었다.
대학 때 땡땡이를 밥 먹듯 하던 나였어도 말이다. 모처럼의 쉬는 주말을 올인하여 공부하는 이들을 보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 사전엔 종일 공부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아마 글쓰기에 대한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물 흐르듯 쉽게 쓰는 이들을 보면서 “저 정도의 글쓰기는 나도 하겠다.” 생각이 들고, 일기의 연장 정도로 만만히 보고 문인을 지망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한 문학소녀적인 감성을 부추겨 문학교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감성만으로 문인이 된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쯤은 일류문인이 되었어야한다. 꼭지만 틀면 자동으로 쏟아지는 눈물이 좀 많은가? 흥분도 잘하고 열도 많고 말이다. 마음만으로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고 싶지만 그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오랜 세월 마음에 품고 주저주저하며 들어선 글쓰기에의 길이 1992년부터였으니 햇수로 하면 18년째에 접어든다. 풍월 읊는 서당 개 18년차에 잘 팔리지도 않는 작품집 고작 두 권 냈고 종이를 두 번 죽였다. 그러니 문학 활동으로 돈을 버는 일은 전무(全無)하고 전무(前無)한 일이며 전무(錢無)하다. 감히 예언컨대 후무(後無)할 일이기도 하다. 글과 돈은 전혀 친하지 않다고 보아야 옳다. 글을 쓰기 위해 최소한 읽어야 하는 책값은 글 써서 버는 돈을 훨씬 상회하니 밑져도 보통 밑지는 장사가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마음 편히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는 곳도 아닌 이곳에서, 글쓰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생업에 종사하는 이곳 문인들이다. 리커 마켓에서 네일살롱에서 세탁소에서 자바시장에서 손님과 실랑이 하던 이들이 잠시 틈을 내어 글을 구상하고 짓고 퇴고를 하는 것이다. 눈물겹고도 치열한 장면이다. 자유 경쟁 국가이며 경제활동의 성공을 으뜸으로 치는 자본주의 국가에 살면서 이 비생산적인 문학 활동이라니. 그러나 보이지 않는 이 길이 물질보다 훨씬 우위의 길이기에 가고 또 가려는 것이 아닐까? 안개 속 같은 문학의 숲길에 자진하여 들어선 나를 비롯한 문도(文徒)에게 선배가 묻는다. “이 길을 가야만 하는가. 나 아니면 누가 갈 것인가?” “이 길을 계속 가려는가, 왜 문학을 지키려는가?” “그냥 가려는가, 아니면 흔적을 남길 한 발을 딛으려는가?” 격려인지 단속인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 길도 운동선수처럼 매일 연습해야 하는 길이고 결코 쉽지 않은 길이란 걸 알았지만, 공부하고 나니 더 어려운 길이 되었다. 수필의 길, 수도(隨道)는 도량에서의 수도(修道)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강의를 마치신 교수님을 향해 음악회처럼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수필을 쓰는 길에 들어선 것이 한편 자랑스럽기도 한 날이었다.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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