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다멜 지휘 LA필·LA매스터코랄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베토벤 5번에 완전히 매료되었다며 “그와 같은 운명교향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극찬한 LA타임스 음악전문기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난달 두다멜의 할리웃보울 취임연주회에 참석했던 한 음악애호가 역시 베토벤 9번을 듣고 나서 그와 같은 합창교향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디즈니 홀의 오프닝 갈라 콘서트에서 두다멜은 말러 1번을 지휘했는데,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이 두다멜의 말러는 꼭 들어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날의 말러 1번에 완전히 넋이 나갔었다. 그런데 레퀴엠 역시 그러했다. 지난 주말 두다멜이 LA필하모닉과 LA매스터코랄을 지휘하는 베르디의 레퀴엠 연주회는 또 다른 열광의 도가니였다.
레퀴엠(Requiem)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가톨릭 미사곡으로 우리말로는 진혼곡, 진혼미사곡 또는 위령곡 등으로 불린다. 레퀴엠 하면 모차르트의 것과 베르디의 것이 유명한데, 모차르트 레퀴엠이 차분하고 애절한데 비해 베르디 레퀴엠은 격정적이며 극적이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바로 그 스타일이 두다멜에게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던 것이다.
두다멜은 이번에도 악보를 완전히 외워서 1시간반동안 열정적으로 지휘했는데 오케스트라 악보만 외운 것이 아니라 라틴어로 된 합창가사까지 몽땅 외운 듯 내내 입을 벙긋거리며 합창을 이끄는 모습이었다. 제7부로 이루어진 레퀴엠은 마치 7막짜리 오페라를 보는 듯 극적인 감동과 전율의 연속이었다. 그의 연주는 첼로의 아주 미세한 음으로 시작하는 첫 소절로부터 팀파니가 폭발하듯 몰아치는 진노의 날에 이르기까지 섬세한 호소력과 엄청난 파워를 표출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생명력이 넘쳐흐르던지,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일어날 것처럼 느껴졌다면 좀 너무한가.
LA매스터 코랄의 수준높은 연주도 무척 감동적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합창이 들어간 오케스트라 연주는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안겨준다.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인간의 목소리가 주는 숭고한 기쁨 때문일 것이다.
인터미션 없는 82분의 연주가 끝났을 때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브라보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여러번 커튼콜을 보냈다. 이제 이것은 두다멜의 연주 때마다 일어나는 당연한 광경이 된 듯하다. 사람들은 그가 연주하는 동안 감전이라도 된 듯 완전히 몰입하고, 끝나고 나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끝도 없이 보내곤 한다.
그런데 이런 열렬한 환대에 두다멜은 혼자 인사하는 법이 한번도 없다. 언제나 LA필 단원들 속으로 들어가 서서 다같이 인사하거나 함께 연주한 협연자 혹은 솔로연주를 했던 단원들을 앞세워 그들이 인사하도록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 그러한 겸손함이 자기보다 전원 나이 많은 LA필 단원들을 이끌어가고 특별한 소리를 이끌어내는 힘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LA필은 두다멜 한사람을 지휘자로 영입함으로써 ‘대박’을 터뜨린 것 같다. 이 불황에도 그의 연주가 있는 날은 입추의 여지없이 맨 꼭대기 좌석까지 꽉 들어차니 말이다. 여러분의 버켓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야할 일들의 리스트)에도 ‘두다멜이 지휘하는 콘서트 보러가기’를 써넣는 것은 어떨까.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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