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객에 따라 여행 질이 달라지는 기차여행
에비앙에서 독일로 올 때 차를 갖고 왔기 때문에 갈 때도 차를 싣고 갈수 있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함브르그에서 저녁에 타면 다음날 아침에 로라흐(Lorrach)에 도착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3시간 서남쪽으로 운전을 하면 에비앙에 닿습니다. 보통 사람은 2시간 반이면 갈 곳인데 저는 어찌 된 것인지 운전을 오래 하면 졸음이 와서 한 시간 반쯤 후에는 잠깐 눈을 붙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부르그에서 떠나기 한 시간 전까지 역에 도착 하여 차를 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시간 미리 도착해서 차를 지정된 선에 세워 놓고 그 주위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작정 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역 안으로 들어가니 뭐 별 볼일 없는 피짜나 빵 정도 파는 곳만 있었습니다. 그 곳을 지나 뒤 쪽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북적 거리는 거리가 나오고 메르카도(Mercado)라는 또 다른 샤핑센터가 나왔습니다. 속이 상당히 크고 가운데 부분에 고깃간, 빵집을 비롯해서 별별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었습니다. 인파로 북적 거리고 활기가 있었습니다. 스시는 좋아 하지만 일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니 금방 제외 되었습니다.
이태리식 음식 파는 곳 한 군데가 마음에 끌렸습니다. 한 여자가 먹는 스프가 그럴듯해 보여 그 옆에 가서 양해를 구하며,
“무엇을 시키셨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어요?”
“생선 스프 에요”
“저도 똑 같은 것으로 해주셔요”.
카운터 뒤에서 한 사람은 서브만 하고 한 남자는 피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화장끼가 하나도 없이 머리를 뒤로 동여매고 온통 거무충충한 옷을 입은 여자가 스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인기가 있는 음식 같았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은 생선 국물을 냄비에 데우기 시작 하더니 데쳐 놓은 듯한 당근, 퍼넬(fennel- 향기가 독특한 야채) 샐러리와 토마토를 차례대로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새우와 적은 생선 조각을 몇 점 집어넣더군요. 저는 그냥 미리 끓여 놓은 국을 떠서 주는 줄 알았는데 그야 말로 모든 정성을 기울여 만들고 있었습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도 그것 보다 더 잘 할 수 없지요.
동그란 빵을 토스트 하여 거기다가 마늘을 문지르더군요.
벌써 제 입 안에 서는 군침이 흐르고....저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 여자는 마늘 문지른 빵을 약간 움푹한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다가 김이 오르는 스프를 국자로 떠서 담았습니다. 국물과 함께 야채, 생선 조각, 그리고 분홍색을 띄는 새우가 담겼습니다. 따끈한 김과 함께 바다 향기가 코를 스쳤습니다. 수저로 국에 젖은 빵을 조금 잘라 생선 조각과 함께 입에 넣었습니다. 토마토로 약간 불그스름해진 국물이 간도 꼬옥 알맞았고 생선 맛이 어우러진 맛이었습니다. 수많은 생선 머리와 뼈에 붓은 살로 국물을 낸 듯이 거기에는 진한 생선 맛이 나면서도 아주 산뜻 했습니다. 새우맛, 생선맛, 조개등의 맛을 즐기며 다른 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스프를 먹었습니다. 바깥 추위를 잊고 온 몸이 푸근하게 느껴지기 시작 했습니다.
옆에 앉은 사람도 제 스프를 힐끗 훔쳐보더니 자기도 그것을 시키더군요. 마지막 국물을 마셨을 때는 조금만 더 먹었으면 하고 아쉬운 생각 까지 들었습니다. 기차로 돌아오면서 호두 조각이 들은 적은 머핀을 (동그랗고 달콤한 빵) 2개 사들고 왔습니다. 독일의 기차는 보통 중간에 칸막이로 나누어져서 한 칸에 4명씩 타고 잘 때는 벽에 붙여진 침대를 열어 자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기차를 몇 번 타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걸리느냐는 정말 운에 달려 있습니다. 저녁 내내 기침을 하는 여자와 탄 적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꽤 날씨
가 추울 때 였는데 옆 칸의 남자가 옷을 홀랑 벗어 붙이고 런닝셔츠와 팬티만 입고 앉아 있어 같은 칸에 앉아야 했던 여자아이가 기겁을 하여 제가 탄 칸으로 피신을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될 줄 알고 일부러 한 짓이라고 나중에 생각 했습니다.
오늘은 아주 재수가 좋게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와 저만 우리 칸에 있어서 우리는 둘이서 너무나 좋아 했습니다. 표를 조사 하러 온 키 크고 젊은 남자 승무원이 노랑머리의 귀여운 여학생이 마음에 들었는지 쓸데없는 말로 대화를 연장시키며 서성 거렸습니다. 중간에 한 사람이 더 탈 것이라며 “구테 라이저 (gute rise! 여행 잘하셔요)”라는 말을 남기며 마지못해 떠났습니다.
우리는 독일어로 대화를 하다가 막히자, 서로 영어가 통하는 것을 알고는 그 때부터 영어로 얘기를 시작 했습니다. 자기의 의견을 시원스럽게 표현하지 못 할 때 정말 바보 같이 느껴지는 심정 아시지요? 속이 다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25살에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그 독일 여대생은 짐나지움 (Gymnagium 한국의 대학2년 수준) 졸업 후에, 스위스와 애란에 가서 몇 년 일을 했기 때문에 공부가 늦어 졌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니 세계의 첨단을 걷는 독일의 기차가 왜 이렇게 기어가는 구식이냐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정치얘기, 한국얘기는 물론 그 아이가 읽고 있던 다빈치코드 (Da Vinci Code)라는 미국을 휩쓴 책 얘기로 이어 졌습니다. 저도 마침 몇 달 전에 그 책을 아주 재미나게 읽었기 때문에 서로 좋아 했던 책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베아테라는 그 여대생은 스위스 루잔(Lausanne)에 있는 애인을 보러 간다고 하였습니다. 루잔은 에비앙에서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도시이고 올림픽 본부가 있는 곳 입니다. 우리는 서로
침대 정리를 도우며 잠자리도 같이 준비 했습니다. 그리고는 불편한 잠을 청했습니다. 겨우 잠이 들었나 싶은데 목소리를 듣기에 나이든 남자가 부산스럽게 우리 칸으로 들어서며 아래 침대가 자기 자리인데 두 여자가 자고 있다고 떠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지정된 침대가 위의 것인지 아래 것 인지 확인 하지 않고 (정확해야 하는 독일에서 큰일 날 짓을!) 우리가 그냥 편하게 아래서 자기로 하고 선반 위의 침대를 나중에 오는 사람을 위해 하나 준비해 두었거든요.
우리는 둘이다 눈도 뜨지 않고 자는 시늉을 했습니다. 자고 있는 여자들을 깨울 만큼 깡패는 아니였는지 투덜거리며 옆 칸으로 가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잠을 잔 것 같지도 않은 뿌드득한 몸으로 양치질을 하였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자고 난 모습이 천사 같다는데 저는 항상 혼이 나간 사람처럼 엉망진창이거든요. “에이! 뭐 볼 사람도 없고 혼자 운전하고 갈 것인데...”, 마음대로 삐쳐 나간 머리를 대충 쓱쓱 뒤로 넘기고 번진 화장은 손가락으로 밀어 버렸습니다.로라흐에 도착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개까지 데리고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서서 얘기 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입에서는 김이 모락 모락 나왔습니다.
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하니 우리는 대합실에 들어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모두들 선잠을 깨어서인지 거북스럽게들 앉아 있었습니다. 옆자리의 남자가 저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는 일본에서 4년간 살았다구요. 동양을 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덴마크에 살고 있는데 베른 근처의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하였습니다. 기차에 탄 사람들의 대 부분이 아마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지내기 위해 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짐작 했습니다. 우리는 셋이 모두 외국 생활을 한 사람들 이라 외국 생활에 대한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뉴욕 얘기가 나와서 우리 아파트는 유엔 근처라고 하니 그 동네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엔에서 일 하셨습니까?”
“아니요. 저는 저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아아, 그럼 지금 현재 덴마크 주재 스위스 대사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일본도 대사로 가 계셨군요”.
“네, 그렇지요”.
“아, 그러셔요!”
저는 속으로, 어쩐지 사람이 상당히 교양도 있고 견문이 넓어 보이더라니! 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 때 마악 이제 각자의 차로 가도 된다는 지시가 마이크를 통해서 들렸습니다. 저는 참 아쉽
게 생각 하면서 이번에는 제가 억지로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셋이서 같은 칸에 탔었다면 무척 재미나게 얘기를 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베아테와 저는
4명까지 타는 2등 칸에 있었지만 아마 대사님은 필경 일등을 탔었겠지요. 언젠가는 그 두 사람
에게 에비앙을 안내할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저는 자리를 떴습니다. ▲김영자의 블로
그: www.yongjakim.blo po .com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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