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인산인해는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얼마 전 비영리단체 NACA (Neighborhood Assistance Corporation of America)가 LA컨벤션센터에서 마련한 모기지 재조정 엑스포에 갔을 때 이야기다. 기자가 참석한 이날 하루에만 1만여명의 인파가 몰렸다니. 미국 생활 20년 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은 스포츠 경기를 제외하면 본보 주최 할리웃보울 음악대축제 이후 처음인 것 같다.
NACA측은 5일간 행사에 약 5만여명이 온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1990년 보스톤에서 발족한 NACA는 주택관련 서비스를 주로 하며 LA를 비롯 전국 40여곳에 지부를 두고 있다. LA에 앞서 4개 도시에서 가진 행사에도 20만 가까운 홈오너들이 참석했다니 가히 ‘모기지 대란’이란 말이 실감난다.
엑스포 현장에 간 것은 취재가 아닌 개인적 용무 때문이었다. 일생일대 내 집 마련 찬스를 번번이 놓치고 마침내 지난해에야 ‘홈 스윗홈’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바닥’쯤 왔겠거니 했던 집값은 속절없이 더 떨어지고 말았다. 수입까지 줄어 이참에 모기지 재조정 상담이나 받아볼까 하고 찾아간 것이다.
마침 토요일이라 느긋하게 오전 11시쯤 들렀다. 1~2시간이면 끝나겠지 하고 예상했다. 하지만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야무진 꿈’이었음을 알게 됐다. 시베리아 벌판같이 광활한 컨벤션센터는 에어컨이 잘 작동했지만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후끈 달아올랐다. 일부 참석자는 낚시용 의자에 아이스박스까지 들고 오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신청서 작성, 웍샵, 카운슬러 면담, 모기지렌더 면담 순으로 진행된 행사는 거북이걸음이었다. 한 단계를 거치는 데만 꼬박 2시간여가 걸렸다. 길고 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끝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도 간혹 보였다.
참석자 대부분은 흑인과 히스패닉.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주고객이며 피해자였다는 보도가 피부에 와 닿았다. 하지만 한인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그만큼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다행이겠지만 혹 정보를 접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웍샵과 카운슬러 면담을 마치니 밤 10시, 11시간의 대장정 끝에 마지막 단계인 모기지렌더 면담 그룹에 합류했다. 여느 엑스포와 달리 모기지 렌더 관계자들이 직접 나와 재조정 자격 여부를 그 자리에서 결정하는 터라 참석자들 얼굴에는 기대감과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피커에서 NACA 관계자의 음성이 들리고 누군가 단상에 올랐다. 참석한 홈오너 중 한 사람이다. “월 모기지 페이먼트가 1,900달러에서 1,000달러로 줄었어요.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이 홈오너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춤을 추는 시늉까지 했다.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루하기 그지없던 컨벤션센터가 어느새 생기 넘치는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물론 이날 참석자 모두에게 당장 행운이 찾아간 것은 아니다. 기자를 비롯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적잖은 사람들은 “기다려 보세요” 혹은 “미안 합니다”라는 대답만 들은 채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단 하루 11시간의 체험, 모기지 재조정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지 실감했다.
소중한 보금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홈오너들은 필사적으로 모기지 재조정에 매달린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덤볐다간 쌈짓돈까지 날리고 마음에 상처만 입는 경우도 꽤 되는 게 현실이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모기지 재조정업체와 일부 변호사로부터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한인 홈오너들도 줄을 잇고 있다니, 차라리 이런 공신력 있는 비영리단체들을 적극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본다.
NACA의 웹사이트(www.naca.com)에는 모기지 재조정 정보가 자세히 실려 있다.
이해광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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