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알게 모르게 파고드는 중독은 언젠가부터 의식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불감증 수준을 넘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다. 특히 한국인의 중독현상은 스피드와 유행성을 동반한 것이기에 득과 실을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무섭게 퍼져버린다.
기성세대가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그러한 중독의 흐름이 현재라는 시간의 틀을 벗어나서 미래라는 시간의 틀 속에 자리하고 있을 때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과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점을 심각히 받아 들여야 한다.
얼마 전 한 라디오방송을 타고 나오는 어느 의사의 표현이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미용성형과 비외과적 성형시술이 한참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시점에 또 하나의 신 개발품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나는 영화를 보면 그 배우의 연기보다 얼굴 어느 부위엔 어떤 주사를 맞아야 하고 또 신체적으로는 어떤 시술을 할지를 살핀다”며 “큰 돈 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조금만 손을 보면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외모가 되는데 어떤 여자 분들은 뒤에서 보면 허리부위에 살이 뒤룩뒤룩 튀어 나오는 등 참 보기가 좋지 않습디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그분의 발언이 심하게 취하신 상태에서 하신 말이길 바랐다. 누가 그 의사에게 여성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비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는가. 뜯어 고친 얼굴과 의학의 힘으로 다시 만든 몸이 세상을 사는데 필수조건이란 말인가. 그 의사의 발언은 의사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수준이다.
아무리 외모와 금전 만능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중심리를 이용해 한 몫 챙기려는 상술이 사회의 도덕성에 대한 기준을 마구 흔들어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멀쩡한 사람을 터무니없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어린 학생, 주부할 것 없이 ‘성형수술 계’라는 걸 든다거나 귀하디귀한 시간을 부적절한 아르바이트에 쏟아 수술비용을 마련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인간의 구성 요소는 외모와 정신, 이 두 가지인데 어찌하여 외모만 멀쩡하면 다른 것은 어떤 수준이어도 괜찮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의술을 펼치려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딸이 있는데 쌍꺼풀도 없고 코도 자그마하다.
그런데도 자기의 외모에 대해서 자신이 넘친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외모로 건강미와 더하여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본인의 매력을 스스로 계발해 나가는 그 아이의 태도가 너무나도 예뻐 보인다.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데 그 어떤 노력을 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쉽게 뜯어고치고 나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인격과 성격 형성은 어린 시절부터 이루어지는데 이 시기에 일부 기성세대의 올바르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우리의 꿈나무들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 성실하고 진실되게 실력을 쌓아야 귀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금상첨화’라는 말처럼 뭐든지 잘하고 거기다 얼굴과 몸매까지 받쳐 주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성실하게 자기 계발을 해서 내면과 외모에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자세를 갖추면 된다. 아무리 예쁘다 해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 돼서는 곤란하다. 마치 어느 장난감회사에서 대량생산해서 시판하는 개성 없는 인형 같은 모습이 결코 미인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남녀평등을 원한다면 일단 실력과 인격을 갖추어야 하며 일부 계층이 설정해 놓은 ‘미’에 대한 기준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한 외모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 보자.
전희영 / 성악가·법정통역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