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피스모비치로 기차여행을 갔다. 지난 연말 수술 받을 때, 숨 안 쉬는 마누라 때문에 식겁한 남편이 ‘숨쉬기’만이라도 열심히 하라며 만든 이벤트였다.
Surfliner라는 기차 이름에 걸맞게 해안을 따라 하염없이 바다가 펼쳐졌다. 드넓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건 물새가 아니라 서핑하는 사람들이었다. 1월인데 들판은 어느새 파란 싹이 돋기 시작하여 봄이었고, 파도 타는 이들은 여름이었다. 나무들은 아직 노란 잎을 단 가을인데 먼 산의 봉우리엔 흰 눈이 덮여 겨울이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4계절을 동시에 담고 기차는 휙휙 지나는 거였다. 기차의 기적에 공연히 마음이 급해지면서 쏜살같이 지나간 나의 반세기를 실감하였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운동은 ‘숨쉬기 운동’이라고 떠들곤 했다. 남편과 아이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운동을 가도, 나는 몸을 움직이기 싫었다. 3년 전에 만든 스포츠센터의 멤버십을 고작 열댓 번이나 썼을까? 매일 매일을 숨만 쉬고 살았으니 ‘숨쉬기의 달인’ 정도는 되는 줄 알았다.
관절염과 고혈압, 당뇨, 비만을 골고루 갖추고 아침저녁 한 움큼의 약으로 버티는 삶에 근본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치의는 경고했다. 장기간 약을 복용하여서 위를 버리고 신장은 20% 밖에 사용을 못한다는 소견을 받았다. 먹는 건 밝히면서 운동량은 적으니 살이 찌는 이치는 당연지사. 땅 넓은 미국에 살면서 넓은 면적에 맞춰 몸의 평수만 늘리고 산 세월이었다. 워낙 거대한 비만 인구가 많아서인지 비만에 대한 걱정도 별로 안했다.
근래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엄마는 딸의 건강을 더 근심하신다. “몸매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 살을 빼야 한다” 아픈 엄마의 소원이었다. “웃기는 이 선생이 옆에 있어야 재미있으니 우리 곁에 오래 살아있으라”는 선배님들의 격려도 힘이 되었다. 여고동창이어서 권위가 안 서던 주치의의 강력한 권유도 이번엔 듣기로 하였다. 나 하나 건강해지는 것이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한다니 망설일 일이 아니었다.
연초가 되면 신년 계획들이 무성하다. 다들 ‘운동을 하겠다. 살을 빼겠다’는 결심이 대부분이다. 나의 계획도 20년 넘게 그러하였다. 그러나 매번 작심 3일에 지나지 않았다. ‘최후의 만찬’이라면서 내일부터 다이어트 한다고 먹어댄 날들이 무릇 얼마인가. 몸을 돌보지 않아 합병증에 시달리고 신장에 좋다는 쥐눈이콩을 열심히 먹는 ‘콩밥 먹는 신세’가 되었다가, 결국은 수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두세 시간이면 끝난다던 수술이 문제가 있어 큰 어려움이 있었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숨을 안 쉬는 불상사가 생겨 인공호흡 장치를 하고 죽다 살았으니 말이다. 회복실에서 만난 남편이 크게 걱정했는지 “오늘 새로 태어났다”며 축하한다. 기도의 응원군을 심어두고 들어갔기에 그나마 하늘이 살려준 게 아닌가 싶다.
‘숨쉬기의 달인’이라는 생각도 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숨을 쉬고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늘이 도와야 하는 기적이다. 매일이 마지막 날인 듯 간절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병은 고통이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건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수시로 나를 돌아보며 살되 돌아보는 그 간격이 길지 않기를 기도한다. 철없이 산 생일은 모두 무효로 하고, 2010년 나는 한 살 되었다. 오늘도 선물로 받은 하루에 감사해야겠다.
이정아 /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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