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지진으로 수십만명이 생명을 잃고,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300만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구호의 손길이 역사적 연대가 전혀 없는 한국을 포함, 전 세계로부터 답지하고 있다.
그중 미국과 프랑스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현지를 방문하였고,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머지않아 방문할 것이며, 곧 아이티 공화국 재건을 위한 국제회의가 파리에서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구호와 원조에 이의가 있을 수 없으나 왜 이 나라들이 “질세라” 앞 다투어 움직이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아이티의 비극은 지금으로부터 518년 전인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로부터 배태되었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알고 닻을 내렸던 섬이 바로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 두 나라가 있는 히스파니올라라는 섬이다. 이름에서 보듯 섬은 처음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
콜럼버스 상륙 이전 25만에 달했던 원주민은 유럽인들이 “묻혀온” 괴질과 학살로 25년도 채 안되어 1만4,000명으로 줄었다. 그 자리는 유럽인들과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부터 들여온 노예들로 채워졌다. 노예들은 주로 아프리카 대륙 서부 세네갈의 항구에서 ‘선적’되었다.
1695년 프랑스 루이 14세는 지금의 아이티를 식민지로 선언하였고 프랑스는 노예들을 이용하여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 한때 포르토프랭스 항구는 카리브해 지역 부의 상징이었다. 나폴레옹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1789년 불란서혁명의 영향을 받은 아이티 노예들은 ‘종주국’ 프랑스에 반기를 들고 1804년 지구상 첫 흑인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어 미국이 이 지역 강자로 부상하면서 1915년부터 1934년까지 아이티를 통치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아이티는 타 중남미국가들처럼 미국의 ‘뒤뜰‘로 전락하였다. 미국은 아이티의 기득권층을 비호,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게다가 인근 국가인 쿠바가 1959년 공산화되면서 아이티의 지정학적인 가치가 높아져 뒤발리에 부자의 장기 독재(1957 ~1986)까지 눈감아 주었다.
아이티에 UN군까지 주둔하게 된, 내란을 방불케 하는 혼란의 단초는 백인 국가들의 식민지 정책과 제국주의가 제공하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CNN을 통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수도 포르토프랭스 공항 도착 후 발표한 아이티를 위한 장기 대규모 원조계획을 들으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수백 년 동안 착취하고, 오랫동안 빈곤 상태로 방치하여 두었던 아이티를 이제 와서 지원 운운하는 것이 공허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아이티가 처한 비극의 원죄는 백인국가들에게 있다.
대참사를 당한 아이티 국민들의 더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면서 한인들도 아이티 난민 돕기 성금모금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500년간 백인들이 그들에게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서도 그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어야 하겠다.
한태격 / 뉴욕 평통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