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개월부터 큰 음향 때문에 태아가 놀랄까봐 영화관에 안 가기 시작해서 이제 그 아기가 4개월이 넘은 최근까지 영화관 근처에도 못 가봤다. 그러다가 거의 10개월 만에 비가 주룩주룩 오던 주말 ‘아바타’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는 훌륭했다. 나비족의 외형에 지구인의 의식을 주입해 ‘아바타’를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했고, 화면의 디테일과 영상의 아름다움은 감동이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천재성이 놀라웠다. 자원고갈에 시달리는 지구인들이 판도라라는 먼 행성에서 자원을 쟁취하기 위해 그 행성의 토착민인 나비족과 싸운다는 큰 줄거리 속에 영화를 본 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았다.
자연과 교감하며 사는 나비족을 통해서는 자연을 함부로 대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집안에 식물이라고는 머니 트리 하나 달랑 있지만 처음 며칠 말을 걸어줬을 뿐 거실 구석에서 외면당한 채 있다. 또, 지구인으로서는 하체를 움직일 수 없는 주인공 제이크가 ‘아바타’로 사는 순간에는 맘껏 뛰고 날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니 맘먹은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내 몸에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어떤 것보다도 유독 뇌리에 남아 뭔가를 자꾸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대사가 하나 있다. 바로 마일즈 대령이 제이크와 싸우며 했던 말 “네 종족을 배신하는 기분이 어떠냐?”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라는 노래를 부르며 했던 놀이가 생각난다. 가위바위보로 상대편을 한 명씩 뺏어오는 놀이였는데,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편 가르기를 즐겼었나 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종교, 학교, 국적, 인종 등을 기준으로 수많은 편 가르기를 한다. 편 가르기는 한 편이 됨으로써 협동하고 단결해서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으므로,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편의 개성과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다른 편에 속한 사람을 존중해줬다는 이유만으로 배신자라 낙인찍어 버린 적은 없는지, 내가 속해 있는 편이 아닌 다른 모든 편들은 적으로 규정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집단 이기주의적인 마음, 내가 남보다 항상 옳다는 어리석음, 내 민족이 타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내가 가진 문화가 타인이 가진 문화보다 더 가치 있다는 오만이 갈등을 만든다. 이런 것들을 넘어설 수 있다면 멜팅팟이라 불리는 미국에서의 우리 삶이, 비록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행성 판도라의 삶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선배의 옆집에 타인종 가족이 이사왔다고 한다. 선배는 그 집이 이사온 후부터 집에 바퀴벌레가 생겼다며 아파트 사무실에 지저분한 타인종들을 받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선배에게 오늘 당장 퇴근길에 전화해서 이 영화를 추천해야겠다. 물론 편 가르기니 어쩌니 하는 말 대신 “3D 아이맥스로 보니 영화가 살아 움직여. 꼭 봐야 해” 등의 말로 말이다.
실비아 김 <팬콤 광고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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