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최근 일련의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집권 여당과 보수 언론이 연일 사법 개혁을 외쳐대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과격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법원장 차량에 계란을 던지고 법관의 신변을 위협하는 등 과거 자유당 시절 백골단과 땃벌떼를 연상케 할 정도로 날뛰는 모습이 보기에 섬뜩하다.
집권 여당은 MBC PD 수첩 보도 사건 등 논란을 부른 판결의 배후 세력으로 ‘우리법 연구회’를 지목하고 해체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전교조 시국 선언과 민노당 강기갑 국회 폭력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김균태 판사와 이동연 판사는 모두 이 회 소속이 아니며 국회 홀을 불법 점거한 민노당 당직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전계선 판사는 이 회 전 멤버다.
또 정부가 민주노총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예상 외로 정부 손을 들어준 김흥준 판사는 우리법 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러나 집권 여당과 보수 언론은 약속이라도 한듯 김 판사의 회장 전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된 PD 수첩 제작진에 무죄를 선고한 문성관 판사야말로 이 회 소속도 아니고 진보 성향과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억지로 ‘진보’ 딱지를 붙여 사퇴를 강요하는 것은 저질 코미디가 따로 없다.
문제가 된 판결 대부분이 우리법 연구회와 무관하거나 이 회 소속이면서 오히려 보수적 판결을 낸 판사가 적지 않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집권 여당이 그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더구나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판결 책임을 묻겠다니 이는 사법부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정치적 저의에서 나온 발상으로 묵과할 수 없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예견하고 비판했다가 법전에도 없는 혹세무민 죄에 걸려든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업무 능력과 관계없이 전임 정권에 의해 임명됐다는 이유로 쫓겨난 정연주 전 KBS 사장 등에 이어 PD 수첩 제작진에 대해서조차 줄줄이 패소 판결이 내려진 것은 집권 여당과 수구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관의 편향성 때문이 아니라 정권의 시녀인 검찰이 애초부터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무리하게 기소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의 검찰을 제쳐놓고 멀쩡한 법원을 개혁해야 한다며 법석을 떨고 있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궤변일 뿐이다.
정작 개혁이 필요한 곳은 검찰이다. 확인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슬그머니 언론에 흘려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이렇다 할 물증도 없이 수갑부터 채우고 보는 수사 관행을 뜯어 고치고 무소불위의 기소권 남용을 막기 위한 검찰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PD 수첩의 보도에 다소 과장되고 정확하지 못한 내용이 들어 있을지언정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비판적인 언론 보도 내용을 임의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 언론 자유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의 깊은 뜻을 국민 모두 엄숙한 마음으로 숙고해 봐야 할 것이다.
김중산 /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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