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옥 소설가를 추모하며
-장태숙(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미주문단의 큰 별이 졌습니다.
30여 년 동안 미주문협을 사랑하시고 그보다 더 오래 미주문단을 아끼시고 가꾸시던 소설가 고 송상옥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습니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청청한 생전의 성품답게 그렇게 가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이 충격에 우리는 너무 놀라고 황망하여 깊은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시던 날,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은 밤새 어찌 그리도 모질게 몰아쳤는지요. 하늘도 선생님이 가시는 것이 슬퍼 통곡을 한 모양입니다.
미주문단의 가장 큰 어른으로, 미주문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시며 문학인의 참된 자세로 미주문협을 설립하시고, 초대회장부터 5번의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미주문협을 튼실한 반석위에 세우심은 물론, 50여 년 동안 유명 소설가로서 창작활동을 펼치시어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주의 문인들에게도 더없는 귀감이 되셨지요.
너무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점은 선생님의 등단 50주년 기념행사를 작품집이 나오는 올 봄에 열기로 했는데, 이제는 봄이 와도 할 수 없다는 것과 미주문학에 연재 중이던 ‘창작 50년, 작품에 쓰지 않은 이야기’도 3회에 그치고 말아 우리가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삶 자체가 소설이셨던 선생님께서는 생의 마지막도 소설처럼 마치셨습니다.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하시는 분들은 혹 선생님이 엄격하고 차갑다고 하시지만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분들은 선생님께서 얼마나 낭만적이고 마음이 여린 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회식자리에서 항상 노래 대신 외우시던 김수영 시인의 시 ‘달나라의 장난’을 암송하실 때면 늘 처연하시곤 하셨지요. 문단에서 모진 일을 겪으실 땐 문단에 들어오지 말고 글이나 써야 하는 건데 괜히 진흙탕에 발을 담갔다고 한탄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폭풍 속에서도 굳건히 미주문협을 지키셨고 미주문단을 정화시키셨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생님의 업적은 한국문단 뿐만이 아니라 이곳 미주문단에도 길이길이 보존, 기억되며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선생님과 지난 10여년의 일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스쳐갑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저에게 미주문협의 일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 고분고분하지 못한 저는 가끔 반항하곤 했었지요. 그때마다 호령 치시던 그 음성이 벌써 그립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땐 제가 생각이 많이 어렸어요. 그 호령으로 제가 이만큼 성장하여 감히 선생님의 뒤를 이어 미주문협의 중책을 맡고 있나 봅니다. 선생님의 숭고한 뜻에 어긋나지 않는, 바른 미주문단의 정립을 위해 더욱 전심전력하겠습니다. 높은 곳에서 항상 지켜 봐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즐겨 암송하시던 ‘달나라의 장난’ 한 소절, 선생님께 바칩니다.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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