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회에 살아가는 현대 후기 사람들은 옛 사람들이 전해준 ‘믿음’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첨단기술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이 무슨 소용이냐? 하는 심사이다.
그러나 잠시 생각을 모아 우리 사는 일을 살피면 사람 산다는 일이 모두 믿음으로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 살려면 음식을 먹고 여기저기 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모두 믿음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음식을 먹을 때에 우리는 먹을거리가 위장에 들어가서 소화가 되고 영양소로 변하여 몸을 지탱해 주리라는 믿음으로 먹는다. 혹여 음식에 독이 들어 있다가 몸으로 들어가서 복장을 해치고 목숨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면 그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세상에는 독 든 음식을 먹고 병에 걸리거나 죽는 일이 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내가 먹는 음식에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믿으며 하루 세 끼씩 음식을 먹는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큰 길로 나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동차 사고가 생기면 큰 일이 생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차 사고로 불행을 당하는 일이 매일 일어난다. 그걸 알지만 우리는 내가 운전하는 차에는 그런 사고가 생기지 않으리라 믿으며 차를 몰고 큰 길로 나선다.
믿음으로 음식을 먹고 믿음으로 자동차를 운행하고 다니는 것이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가 당하는 형편과 처지에 따라 믿는 상대와 내용은 다르지만 믿는다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먹을 때에는 음식물의 정결함을 믿고 요리해준 사람의 진실함을 믿게 마련이고, 차를 운전할 때에는 자동차의 견고함을 믿고 정비해 준 사람의 기술을 믿는 것이고, 시간에 맞추어 붉고 누르고 푸른빛으로 변하는 네거리의 신호등을 믿으며, 저쪽에서 내 길로 달려오는 운전사의 정신이 똑똑해서 나와 박치기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상황에 관하여 세상의 철학과 종교는 여러 가지 해석을 주고 있다. 기독교의 설명은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은 비록 다른 동물들과 다름없이 선조에게 물려받은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체 속에 넣어주시는 생령(生靈)으로 인하여 목숨이 시작되는 존재이다. 사람도 육체를 타고났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육체의 욕구에 따라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사람은 몸속에 내재하는 생령의 요구에 따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서 생의 의미를 구하며 가치를 찾음으로 만족을 얻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혼돈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잊지 말고 하찮은 세상의 물질이나 기계나 사람이나 부질없는 운명을 믿을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생령을 넣어주어 살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 안에서 생의 목표와 사명을 찾아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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