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경수
UH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코리언을 포함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커뮤니티 형성사와 정체성 변용에 관한 비교연구를 위해 필자가 이곳 하와이에 온 지 이제 겨우 1개월이 되었다. 그래서 아직 물설고 낯설은 점이 많은 필자는 며칠 전에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는데, 이를 독자들과 다소나마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펜을 들게 되었다.
그 ‘경험’이란 다름이 아니라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한 할머니의 장례식에 조문갔던 일이다. 김연이(佛名: 선법화) 할머니가 지난 4월 9일에 하와이 무량사에서 10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17일 다운타운에 위치한 볼트윅 장례소에서 불교식으로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특히, 고인을 위하는 마음에서 유족들은 전통 상복을 한국에서 손수 들여와 입었다(사진참조). 이는 미국식 장례문화가 일반화된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드문 일이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선 105세라고 하는 고인의 연세에 놀라움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고인은 190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났다. 우연히도 이 때는 을사늑약의 체결로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박탈당했으며, 하와이 한인 이민사와 관련해서는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이주가 전면 금지되는 해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가족초청으로 1985년에 태평양을 건너 처음 이곳 하와이 땅을 밟은 ‘뉴커머’로, 생의 황혼기를 하와이에서 보낸 셈이다. 비록 초창기 이민자는 아니지만, 1세기를 넘긴 고인의 개인사는 굴곡 많았던 한국의 근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해 그리 녹록치 만은 않았을 것이다.
상주인 이봉호 씨는 고인은 105세까지 병원 신세 한 번 지지 않았으며, 타계하기 얼마 전까지 무량사 앞마당을 항상 비로 쓸었을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고인은 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할머니는 빅토리 오토 바디샵 경영해 성공한 아들의 광고가 게재된 한인록을 어루만지는 것이 하나의 일과였다고 한다. 그리고 용돈으로 받은 1달러 짜리 지폐들을 아들 준다고 이불 사이에 차곡차곡 모으거나, 아들 사업에 쓴다며 길에서 빈 상자를 줍곤 했다고 한다.
105세까지 무병장수한 것도 그렇지만, 더더욱 놀라운 것은 다비식을 마치고 화장을 한 고인의 유해로부터 사리가, 그것도 18과나 수습이 되었다는 점이다. 고인이 평소에 얼마나 불심이 강했고 불교와 인연이 깊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권도현 무량사 주지 스님은 “사리는 오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스님들에게서만 나오는 불가사의한 것으로 일반인에게 발견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면서도 “고인은 갖은 고생 속에서도 평생 수행의 끈을 놓은 적이 없었으며, 타인의 허물을 비난하는 법이 없었으며, 또한 늘 수행자의 맑고 청정한 모습으로 살아서 이렇게 맑은 사리를 남긴 것도 무리가 아니다”고 전했다. 장례식 당일에는 조문객들도 사리를 친견할 수 있었으며, 추후에도 하와이 무량사에서 볼 수 있다. 상주 이봉호 씨는 림팩(RIMPAC) 훈련 관계로 대한민국 해군과 인연이 깊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천안함의 침몰로 무고한 장병들이 희생되었다.
천수(天壽)를 누린 할머니와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장병들이 오버랩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요즈음이다.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평생을 ‘조용한 삶’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필자의 금번 기고가 그러한 고인에 누가 되지 않기를 삼가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고인이 평소 즐겨 불렀다는 노래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가사를 읊자니, 마지막까지 안분지족의 해탈자적 삶을 조용히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고인의 생전 모습이 눈에 선해 코끝이 찡해진다. 부디 극락왕생 하옵소서!
천대 자리 만대 자리 / 철수로 두른 자리
황금을 뿌린 자리 / 이내몸 누울 자리
죽고나서 삼일만에 극락가소 / 아미타불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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