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시 올림픽 스태디움 근처에 담장을 온통 보라빛 꼬마전구로 장식한 커다란 주택단지가 있다. 북경에서 제일 비싸다는 빌라촌으로 최고 미화 1천2백만 달러를 호가한다는데 그중 2채를 조선족 비즈니스맨 N씨가 소유하고 있다.
북경시 서북부에 있는 N씨의 회사를 방문해보니 한쪽에서는 한약을 투입할 비닐봉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봉투들 위에 다양한 한의원 이름들이 인쇄되어 나오고 있었다. 중국내 전체 한의원의 70%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니 기계들이 쉴 사이가 없어보였다. 그는 5백명의 세일즈맨을 두고 중국내 3만개의 양방병원에 소형의료기구 납품도 하고 있다.
그분을 주체로 12명의 성공한 조선족 비즈니스맨들이 의기투합하여 중국내에서 국가의 정식 허가를 받은 2개의 조선족 학술단체중 하나인 조선족 사학회(또 하나는 과학회)를 후원한다는 말을 듣고 UC 리버사이드에 설립되는 김영옥 재미동포 연구소와 연계를 맺어 해외동포 연구를 함께 해나가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였다.
김영옥 연구소의 후원회에도 몇 분이 가입을 해주시면 좋겠는데 연회비가 1천 달러라고 내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자 그분이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자신들은 일인당 연 2천5백 달러씩 걷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올여름에는 친목을 다지기위해 스코틀랜드로 골프여행을 간다고.
H사장은 연 2천건의 특허 업무를 처리하는 변리회사의 대표로 직원 80여명을 두고 북경시내의 하이테크 지역 버젓한 건물의 2개 층을 전부 사용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 지사가 있으며 앞날을 대비해 평양에도 직원을 두고 있다 한다.
전 세계를 다니며 씨앗을 사들여 파는데 유독 미국에서만 비자를 안내주어 미국에 돈을 못 벌어주고 있다는 L사장. 부드러운 테너 음성으로 중국노래는 물론 한국 곡, 팝송까지 멋들어지게 불러대는 그가 왜 미국 비자를 못 받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여권에 북한을 드나든 기록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이론이 우세해보였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은 북한과 이웃하고 있다. 국경도시 도문의 소학교 아이들은 두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를 터덜터덜 건너 북한으로 소풍을 다녀오기도 한단다. 문화혁명 전에는 두만강에서 조선족 아이들과 북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함께 놀았다고 했다.
조선족 비즈니스맨들에 미연방정부 고위관료 출신 N여사까지 끼어 함께 거나한 저녁상을 나누며 환담을 했다. 월드컵축구에서 중국과 한국이 맞붙으면 이들은 아무래도 한국을 응원한다했다. 남북한이 맞붙으면? 어느 쪽이든 잘하면 박수쳐준다는 답이 많았지만 못사는 북한을 더 격려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들은 조선족을 조심하라는 말이 한국 비즈니스맨들 사이에 만연해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 같으면 전혀 상대도 안할 사람들을 파트너라고 잡아서 사업을 한다고 오가다가 일을 그르치는 한국 사람들을 많이 봤다”는 것이다.
곡조가 비교적 단순하여 따라 하기 쉬운 북한 노래들을 조선족 비즈니스맨들과 함께 불러보았다. “세금 없는 나라”라는 전형적인 북한 찬양가가 나오자 “세금 있는 나라”에서 고액의 세금을 바치면서 좋아라 살고 있는 동포들이 쨍그랑 건배를 하며 즐거워했다.
그 자리에 앉아 나는 이들 조선족들처럼 중국을 깊이 이해하고 또 북한을 정치논리 보다는 경험에 의거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한국에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한중관계 또는 남북한 관계에서 이미 이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비중은 앞으로 더욱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을 하며 다시 한 번 쨍하고 건배를 들었다.
김유경 / Whole Wide World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