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초 신년 미사를 마치고나서 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당입구에 성서구절을 적어놓은 쪽지를 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나가면서 하나씩 가져가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줄지어 나가면서 사람마다 바구니에 담긴 쪽지 하나씩을 집어갔습니다. 나도 하나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집에 와서 펴보았더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는 구절이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내 속을 환히 들여다보시며 쪽지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마주치고 싶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흔쾌히 놓아주라고? 그럴 수가 없습니다. 쪽지를 책갈피에 넣어 저만큼 미루어 놓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조용한 시간이면 그 쪽지가 생각나고, 가슴을 찔러댔습니다. 내가 누구를 용서할만한 사람인가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움도 증오도 사랑의 방법이다. 시간과 함께 해결 되어지는 것이다”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세월은 무심히 잘도 흘러갔습니다. 어느새 오월입니다. 문득 작년 이맘 때, 한국에 나가 도보로 국토종단을 하던 중 5.18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계엄군이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소문의 당사자도 거기에 묻혀 있었습니다. 임신 8개월 만삭의 몸으로 고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집 앞 길에 서있던 그녀는 칼이 아닌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최미애씨입니다. 그녀의 묘를 찾아보았습니다. 비석 뒤편에 “당신은 천사였소”라는 남편의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깊은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었는지 궁금해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여러 이야기 가운데 5.18유가족을 비롯한 광주의 시민단체가 가해자인 군부대를 찾아가 화해와 치유를 위한 노력을 했다는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부모형제 아내를 잃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하고 화해를 청하다니 가슴 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깊은 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아있습니다. 새벽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고 별은 태양 앞에 빛을 잃습니다. 작은 아픔을 청산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고,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생각에 잠겨봅니다. 쪽지를 꺼내어 다시 읽어 봅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정찬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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