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진
무량사 포교사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이 세상 밖으로 일곱걸음을 걸어나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를 외친 날이다.
혹자는 갓난 아이가 어찌 말하고 걷겠느냐고도 하지만, 이는 부처님의 탄생 자체가 ‘하늘 위 하늘 아래 각각의 모든 생명이 평등하고 존엄함‘을 선언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다. 처음에 이땅에 오실 때도 한 인간으로 왔으며 해탈에 드는 날까지도 부처님은 생노병사의 모든 현상을 고스란히 감내했다.
부처님은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했으며 사랑하는 제자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부처님은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고단함을 단 하나도 비껴가지 않았다. 오히려 인연따라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무상의 이치를 또렷히 보게하여,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준 참 스승이었다.
부처님 당시 이야기 중에 박칼리라 비구의 이야기가 있다. 당시 박칼리라는 병세가 위독해져 마지막 소원으로 부처님을 뵙고 싶어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부처님께서는 한달음에 달려와 제자에게 ‘ 많이 아픈가? ‘ ‘음식은 조금이라도 삼키었는가?‘ 세심히 살피며 끝으로 물었다
‘박칼리야, 너는 어떤 후회되는 일이나 원통하게 생각되는 일은 없느냐?”하고 묻는다. 그때 박칼리라는 말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싶은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후회되고 원통할 따름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은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박칼리야, 이 썩어질 몸뚱이를 보고 예배를 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너는 형체를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형체는 덧없는 것입니다” “감각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것도 덧없는 것입니다.” “박칼리야, 덧없는 존재는 괴로움이다. 괴로운 것은 주체가 없다. 또 덧없는 것에는 나와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해탈하는 것이다.”
마침내 박칼리라는 지혜의 눈을 뜨고 생사윤회가 없는 열반에 들었다. 이 이야기에서 비춰지는 부처님의 모습은 얼마나 따뜻하며 자애로운가.
마지막 숨을 거두려는 제자를 깨달음의 문으로 인도하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듯 문답하고 있는가.
부처님은 죽은 사람을 살려놓거나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거나 기도한다고 안될 일을 되게 해주는 그런 분이 아니다.
부처님은 경제적 부와 쾌락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길을 통해 참다운 행복으로 가는 지혜를 알려준 분이다. 2700년 이어온 그 법등이 오늘 다시금 환하게 불을 밝혔다.
그리고 화답하듯 무량사 도량 가득 연등을 밝혔다.
아름답다. 아름다운 풍경에 저마다 탄성을 내며 덕담을 나눈다. 부처님의 가피요, 덕화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할 때이다.
연등 하나하나의 빛이 큰 밝음을 만들어내듯 모든 생명이 부처로 거듭 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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