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을 바라보았을 때/ 쓸쓸한, 끝이 없는 그곳은 그대들의/ 장지(葬地)인가, 버릴 수 없는 어두운 바다에/ 누가 죽어 자기의 혼을 갖다버리는가/ 머리풀고 바다가 우는 것 같다.." (안도현, "22시 바다" 에서)
바다가 통곡하고 있다. 지난 4월20일, 멕시코만 BP 원유 시추시설의 폭발로 시커먼 기름이 바다를 더럽히고 있다. 마치 바다의 동맥이 끊어진 듯 하루 21만갤런의 검은 피가 펑펑 분출되고 있다. 5,000피트 심해 속에서 터진 시추공을 기술난항으로 근 한 달이 넘었는데 틀어막지 못하고 있다.
벌써 500만갤런이 넘는 원유가 루이지애나에서 플로리다 연안까지 덮었다. 이런 속도면 1989년 알래스카의 엑손 발데즈 사건 때 유출된 1,100만갤런을 훨씬 넘어설 추세다. 사상 최악의 기름 재앙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5월의 푸른 생명의 바다가 순식간에 바닷새와 물고기들의 무덤으로 변해간다.
왜 첨단기술을 뽐내는 미국에서 이런 대형 시추사고가 거푸 나는 것일까? 선진 안전대책을 내세우는 세계 굴지의 석유회사에서 시추공을 자동적으로 닫는 잠금장치조차 없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사고 직후 후속조치들이 모두 무력한 까닭이 무엇일까? 청문회를 연 상원의원들 조차 기막혀 하는 이 사태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폭발의 직접 원인은 메탄개스의 누출 때문이라고 했다. 유정을 시멘트 마개로 막던 중 생긴 열과 메탄 버블이 고압으로 팽창하면서 터진 것이라고 한다. 11명 인부가 희생되었다. 비슷한 사고가 1960년대 쉘 시추공에서도 터졌다니 대형 실수가 반복된 셈이다.
BP 기술진은 몇 해결책을 다급히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다. 해저 로봇으로 4층 크기의 100톤급 시설물을 파괴된 유정 위에 씌우려했으나 심해 얼음이 생겨 실패했다. 이번 주엔 튜브를 유정 속에 넣어 분출되는 원유를 밖으로 뽑아내려 시도하고 있다. 기름 유화제 사용과 소각도 병행한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고는 방지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규정하고 있다. 이익에만 급급한 석유회사들의 환경 윤리적 무책임, 기술적 무방비, 그리고 연방 감독부서의 도덕적 해이 등을 질타하고 있다.
노벨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도 부시 때부터 이어진 공직사회의 모럴 해저드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감독관들이 업계와 유착해 환경평가와 안전 감독을 소홀히 한 탓이란 것이다. 왜 미국의 국민의식이 자꾸 저질화 돼 가는 것일까?
2007년 한국 태안만 기름 오염사태가 떠오른다. 갈매기도, 가마우지도 시커먼 원유를 뒤집어쓰고 죽었다. 갯가재며 조개들도 숨을 끊었다. 그런데 온 국민들이 걸레를 들고 기름때가 엉겨 붙은 바위 틈새를 누비며 내 집 마루처럼 닦았다. 그 노력과 정성으로 태안 바다는 다시 청정해역으로 회복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오션’(Ocean)에서 바다의 모습을 생생히 보았다. 고래가 춤출 때 바다는 파도를 튀기며 환호했다. 기름에 절어 돌고래가 죽었을 때 바다는 울었다. 돈에 혼을 파는 인간들이 바다를 생물들의 무덤으로 만들 때, 바다는 머리를 풀고 통곡했다.
바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길은 우리도 걸레를 들고 바위에 엉겨 붙은 기름을 닦아내는 일이다. 우리의 혼속에 덕지덕지 낀 탐욕도 닦아낼 일이다. 바다사랑이 곧 내 사랑이다.
김희봉(수필가,환경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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