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모습의 할머니 한 분이 비좁은 전철에서 이리 저리 떠밀리고 있다가 잘못해서 들고 있던 통을 놓치고 말았다. 이때 이상한 한약 냄새 용액이 사람들 옷과 신발에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몇 사람은 할머니를 보고 화를 내며 “할머니, 젊은 사람 같았으면 가만 안 뒀을 거야”라고까지 얘기했다.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소리 내어 통곡했다. “아이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아픈 우리 아들 먹이려고 어렵게 한약을 20만원이나 주면서 샀는데, 이걸 다 쏟았으니 우짜나...” 그러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당신들 우째 그라요, 쪼깨만 비켜 달라고 허는 소리 못 들었는강...”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의 울음이 계속되자 어디선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욕설이 들렸다. “이 할망구야, 시끄러워, 여그가 당신네 집 안방인 줄 알아, 그래 그게 그리 귀한 아들 먹일 약이면 돈 좀 들여 택시를 탈 일이지... 아, 대중교통은 왜 타고 난리야”라고 했다.그리고 이어서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같은 아주머니 목소리가 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 우리 남편 입원비 50만원을 병원 앞에서 쓰리 당했지만 할망구처럼 그렇게 울지는 않았네. 우리 남편 지금 병원에서 얼마나 아픈가 얘기 좀 해 줄까.. 지금 병원비 못 구하면 병원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단 말이야”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서럽게 울던 할머니가 울음을 뚝 그쳤다. 할머니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첫째 한약을 쏟은 자기 슬픔은 20만원인데 저 사람은 50만원 어치 슬픔을 당했으니 나 보다 더한 사람도 있구나 해서 위로 보너스.
두 번째는 오래 앓아온 우리 아들 하루아침에 한약 한 재 더 먹인다고 벌떡 일어날 일도 아니요.저 사람은 남편이 병원에 있다면 중병일수도 있고 또 죽을 수도 있으니 그래도 내가 좀 낫구나 하는 위로 보너스. 셋째는 아들이 중요 하냐 남편이 중요하냐를 생각해보니, 만일 저 아줌마한테 아이라도 몇 명 있으면 남편이 병원에 있다면서 시간을 다투는 병일수도 있을 테고 거기다 남편이 죽는다면 아이들 데리고 살 일이 막막해 지겠지. 그래 저 여자 보다는 내가 나은 형편이구만, 할머니는 아주 급하게 그 생각들을 하면서 울음을 그쳤던 것이다. 내 설움과 남의 설움을 지수로 비교해 보니, 나는 그래도 행복한 지수 쪽에 더 가까이 가 있다고 스스로 위안해 보는 것이다.
물론 내가 손가락을 베었다면 동네 사람 다리 기브스 한 것 보다 더 아픈 것 같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모든 이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이며,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밝게도 또 어둡게도 보이는 것이다.
행복지수는 계속 느끼고 부를수록 더 가까이 다가온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세계도처에서 재앙으로 매일 사람도 죽어간다. 오늘은 한번쯤 소리 내어 크게 외쳐 보자. “우리 식구들 최고!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이렇게 세 번만 크게 소리내 외쳐 보면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