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침 플러싱 인근의 베이사이드에 위치한 한 식당에는 다른 여느 곳처럼 월드컵 축구경기가 위성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축구엔 평소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미국인들도 요즘엔 모두가 ‘애국자’가 되고 ‘해설자’가 되어 있다.
경기를 보던 중 라틴계 고객이 환호와 탄성을 지르자 중년의 한 백인남성이 한마디를 했다. 종교, 섹스 그리고 축구에 대하여 호불호를 표현하다 보면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필자가 그의 말을 받아 “세상에 정치, 종교 그리고 섹스를 대화의 금기로 삼으라는 이야기는 들어 보았어도, 정치 대신 축구가 들어가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였더니, 역사상 축구 때문에 소요가 발생한 것이 비일비재하고, 국가 간 외교분쟁, 더 나아가 전쟁까지 유발되지 않았느냐고 반론을 제기했다.
지구촌이 2010 남아공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운동장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같은 척도와 규정, 규칙이 적용된다. 일반 현실사회에서는 사람에 따라, 즉 출생신분이나 신체조건 및 환경 등에 따라 누구는 50m 전방에서, 다른 이는 30m 전방에서, 어떤 이는 아무 혜택 없이 출발점에서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운동장에서만은 선수 전원에게 같은 규정과 규칙이 적용된다. 누구나 필드에서는 차별 없이 평등하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특히 남아공에서 피부색깔에 상관없이 평등이 요구되는 대 행사가 진행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 땅은 15세기 후반 유럽 백인들에 의하여 정복되었고, 19세기 중반까지 백인 상인들이 그곳의 흑인들을 신대륙으로 팔아넘기는 노예무역을 자행하였을 뿐아니라 유럽제국주의자들에 의해 1960년대 초까지 다이아몬드, 금 등 엄청난 지하자원을 착취당하였다.
수백년 동안 식민지배를 경험하였고 빈곤과 굶주림, 질병 그리고 내란으로 점철되어온 아프리카대륙에서 평등이 요구되는 운동경기가 개최된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일 뿐 아니라, 역사적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수백인정권이 흑백인종차별주의 정책을 혹독하게 실시하였던 땅에서 지금 대회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남아공에서는 20%도 되지 않는 소수 유럽계 정복자들이 80%가 넘는 다수 흑인원주민들을 1990년까지 수백년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라는 정책으로 지배하여 왔기 때문에 흑인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던 곳이다. 예를 들면, 공공건물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게시되어 있었다. “For Use by White Persons : These Public Premises and the amenities thereof have been reserved for the exclusive use of white persons ?By Order of Provincial Secretary (이 건물과 부속건물은 백인 전용이다. 지방행정관의 명에 의함)
인권자체가 부재하였던 곳이다. 지금도 백인통치시대의 잔재가 남아있어 인구의 1/4이 실업상태이며 그들 빈민층은 하루 1달러25센트로 연명하고 있다.
평등이 요구되는 세계인의 축제가 “희망을 위한 축구(Football for Hope)” 나 “경기를 위해, 세계를 위해(For the Game, For the World)” 등의 모토를 내어 걸고 있는 이면에는 과거 백인들의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가 숨겨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월드컵 개최지는 평등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이 ‘이상적’으로 부합되는 곳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그 땅의 옛 상전이었던 대영제국의 후신인 C조의 잉글랜드가 월드컵경기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옛 종주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나라들의 경기 위에 신의 축복이 내릴 지 의심스럽다.
한태격 / 뉴욕 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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